오혜숙 수필가

요즘 때 이른 불볕 더위에 어떤 도시는 백년만의 최고의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 삼복더위도 아닌데 벌써 한여름의 기온이 온 도시를 휘감고 중국서 날아온 미세 먼지와 더불어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무더위에는 시원한 먹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더위로 인해 깔깔해진 입안에 곡기를 넣는 것이 심드렁해 냉장고 속 수박으로 끼니를 대신하려 했더니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한낮과 밤의 기온차가 있는데도 앞뒤 창문들을 활짝 열고 그대로 자고 난후에 거기다 차가운 과일이 들어갔으니 속이 온전할 리 없다. 바로 체한기가 배와 위를 쥐어짠다.

체기를 해소한다고 무모하게 땀을 흘리며 과도하게 운동을 하였더니, 바로 몸에 한기가 돌며 뼈마디가 욱신거려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한겨울에도 감기 한번 없이 지나갔다고 제법 체력을 자신했는데 정작 때 이른 초여름 무더위가 날린 한방에 넉 다운이 됐다.

그러나 몸이 지르는 비명을 무시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평소대로 일을 하였더니 몸은 점점 불덩어리속이고 오한이 들어 종당엔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감기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모든 증상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내 몸에 똬리를 틀고 앉아 버렸다.

국외에 있다 몇 달 전 돌아 온 큰아이가 무심한 아비를 대신해 어미 곁에서 지극으로 돌봐 준다. 이마에 수시로 물수건을 해서 올리고 욱신거리는 팔다리를 이런 저런 말들을 조근거리며 주무른다.

천성이 선한 아이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모성이 가득한 모습이어서 주변인들이 때때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함께 한단다.

그 진중함이 이번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각자 사는게 바빠서, 오히려 가족이라는 혈연의 울타리가 주는 어색함에, 애써 가슴속 말들은 외면하며 신변잡기와 우스갯소리만 하고 지금껏 살아왔다.

세상을 정리하는 노인처럼 나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제어미를 지키며 이것저것 심부름으로 바쁜 아이에게 꽁꽁 싼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 놓는다.

나이를 잊고, 딸과의 관계는 모성을 떠나 인생의 조력자같이 친구로 진전된다. 그것은 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봐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친구로 함께 지난한 인생길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는 것이다. 모처럼 생의 비의 같던 유년을 거쳐 온 청춘의 어둡던 상처들도 타인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편히 아이의 앞에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어린 날 몸이 탈이나 식구들의 왁자한 밥상머리에 끼지 못하고 방 뒤편에서 홀로 누워 있으면 괜히 고아 같은 외로움에 서러워지곤 했다.

하지만 고요한 방안에서 홀로 신열에 들떠 있을 때 밖의 찬바람을 안고 들어온 어머니의 이마에 시원하게 올려 지던 손길을 잊지 못한다.

그 먼 기억 속 손길의 느낌을 큰아이에게서 느낀다.

몸에 탈이 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모처럼 부산했던 주위를 뒤로 한 채 고요해져 뒤돌아보는 나만의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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