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 작년보다 쉽게 출제하여 점수가 올라갈 것이라던 당초 설명과는 달리, 수험생들의 점수가 폭락하여 작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만점자는 없으며, 재수생이 초강세를 이루었다. 수험생 전체집단의 평균 점수는 207.6 점으로 작년보다 3.2 점 하락하였다. 400 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중, 하위권 점수는 줄고, 상위권이 증가함으로써 ‘양극화’ 현상이 초래되었으며, 재수생들이 점수는 재학생들보다 24∼38 점 높아지는 기현상을 이루었다. 특히 상위권의 성적 하락폭이 커서 수험생들이 당황하고 있으며, 더구나 자신의 점수가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와 같이 이번에도 당국이 성적만 공개하고 석차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수능 석차를 공개해서 학생들의 혼란을 막아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여겨진다. 입시전문기관들과 전문가들은, 올해 서울대학교 최상위권 학과는 376∼380 점 이상, 서울 소재 대학교들은 310 점 선, 그리고 지방 국립대학교들은 320 점 안팎이면 합격 가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학을 입학하려는 까닭은, 자신의 일생을 보람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 진학이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쫓는 공리적 계산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의 대학들이 거의 취업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을 갖게 하는 일이 대학의 유일한 사명이라 할 수는 없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자유와 진리의 창조에 있다. 그것 없는 대학은 죽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인류 역사상 자유와 진리의 창조는 대학으로부터 가능하였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칸트의 이성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플랑크의 양자론, 크릭과 왓슨의 DNA 구조 발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적 창조가 대학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대학은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고,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창조의 전당이다. 대학은 어떤 권위와 힘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오늘날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였다. 탐구의 정신은 대학의 정신이다. 물론 대학이라 해서 현실적 삶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 또한 창조의 정신에 공헌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는 수천 개의 학과가 있다. 애완동물의 옷을 만드는 특수동물학과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외식조리학과까지 있을 정도다. 또한 안경광학과, 실버복지과, 바둑학과, 카지노경영과, 코미디 전공에 이르기까지, 전공의 다양성과 선택의 폭이 넓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적과 적성에 따라 학문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생 동안 좋아하고 아낄 수 있는 학문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를 정보의 시대라고 한다. 과학은 현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BT니, IT니, ET니, S니, NT니 하여, 첨단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의 행복과 결부되지 않고서는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학문의 선택은 일생을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유행이나 현실적 이해 때문에 학문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일생을 후회로 남게 할 것이다. 그리고 직관과 유연한 사고가 창조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독단과 복종과 편견은 창조의 적이다. 그리고 학문엔 국경이 없으며, 평범한 사람도 천재가 된다. 생거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두 번씩이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로렌츠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비교행동학의 공동창시자가 되어 프리시, 틴버겐과 함께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하였다. 한은 유기화학자였으나 우라늄 핵분열을 발견한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허시, 루리아와 함께 공동 수상한 델브뤽은 분자생물학의 창시자였지만, 그는 천문학에서 물리학으로,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현대 학문은 학문의 국경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 해도 좋다. 거기서 지적 창조가 이루어진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네티는 빈대학교에서 화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엘리옷은 대학교에서 인도철학을 배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학문의 국경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다.
학과를 중시하는 한 학문의 자유는 불가능하다. 사실 학문엔 국경이 없는 것이다. 학문의 분화는 편의상의 것이다. 새로 대학을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이와 같은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찾고, 위대한 학문을 창조하기를 빌 따름이다.

/ 충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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