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우리 사회의 각종 행사에 각계 각층이 동원되었을 때 ‘군관민(軍官民)이 동원되었다’고 하였다. 이 ‘군관민’이라는 용어가 바뀌어 요즘에는 그런 행사에 ‘민관군이 동원되었다’라고 한다.
군관민은 소위 사회에서 힘깨나 쓰던 계층을 순서대로 나타냈던 말로써 군인이나 관리들에 대하여 민간인들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시절인 일제시대나 독재시대에 사용하던 용어였다. 군관민이 민관군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례 그런 용어이려니 하고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졌던 소위 관존민비 시대의 대표적 용어였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 이 용어가 민관군으로 바뀐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국민이 먼저이고, 군인과 관리들은 국민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관민이 민관군으로 바뀐 것은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시절의 잔재를 없애고 관존민비의 관념을 털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제대로 된 민주 시민 사회에서는 시민 의식과 시민들의 힘이 군과 관을 선도하고, 군인이나 관리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용어가 군관민에서 민관군으로 바뀌었어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인지 지난 시절의 관존민비의 잔영들이 아직도 이곳 저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우리 충북 지역에도 국립대학들이 몇 개 있지만 이들 대학과 관련된 안내표지나 이들 대학의 버스 등에 적혀있는 학교 명칭을 보면 어떤 대학은 ‘국립 아무개 대학’이라고 국립이라는 것을 유난히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이들 대학이 국립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그 이름을 내세우는 이유는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니 그만큼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라에서 운영을 하므로 그곳에 소속한 사람들의 지위도 그만큼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 일게고, 관학(官學)이 사학(私學) 위에 있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일 게다.
일부 사학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근자에 적지 않은 사학들이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에 비하여, 국립은 그런 면에서 사회에 대하여나 국민들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국립임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국립대학이라도 소위 거점대학으로 알려져 있거나 전국 규모의 큰 대학은 비록 영어 명칭에는 national university라고 쓰고 있지만 우리말 명칭에는 굳이 국립이라는 것을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지역 거점대학이 아니거나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런 대학들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립임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립대학들은 사립대학들과는 달리 예산의 많은 부분을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보증하는 국가 기관이므로 그만큼 사회적인 권위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필요도 있고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대학이 국립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국립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등록금이 사립대학에 비하여 저렴하므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의 광고에서 대문짝만 하게 쓰여진‘국립 아무개 대학교’라는 광고 문구가, 필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에는 자꾸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축하 화환에 걸린 리본도 상갓집의 조의 화환에 걸려있는 리본에도 예외 없이 국립 아무개 대학교 총장, 아무개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도 그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가 재정을 맡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만큼 내세울게 별로 없을 수도 있다는 역설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세상은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마치 아날로그 적인 관존민비의 잔영을 이들 명칭에서 보는 것 같다.

또, 사회가 바뀌어 ‘동방불패’처럼 보였던 은행이 문을 닫는 경우도 생기고, 철 밥통 자리로 알려져 온 공무원 자리나 대학 교수 자리가 예전 같지 않게 흔들리고 있는 요즘의 사회 환경에서, 과연 국립이라는 그것만으로 사회적 보증을 장담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고 그러기엔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도 이에 안주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관영이든 민영이든, 세계화 시대에서 생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지 꼭 국립이라는 것을 강조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권위도 서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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