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지금의 내 심정일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대학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지난 주일에 종강과 함께 학기말 시험을 보았다.

좀 더 잘 가르치려는 욕심에 이 책 저 책을 보다 하루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좀 더 명쾌한 답을 하기 위하여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교수들에게 물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생의 노력보다도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였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슬며시 물어 보았다.

“재무관리가 어렵죠?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은 했지만 쉽지 않네요.” “아니예요. 교수님께서 다양한 사례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설명해 주셔서 저희들은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오히려 교수님께 죄송하죠. 재무 관리 수업을 받기 전에 미리 회계학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저희가 기초가 없어서 교수님께서 더 힘드셨지요?”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였다.

지금부터 약 20여 년 전 일이다. 승진고시를 보는데 늘 회계학이 나의 걸림돌이었다.

배운 적이 없는 회계학을 머리하나만 믿고 열심히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으나 늘 회계학으로 인해 낙방의 쓴 맛을 보게 되었다.

고민 끝에 1년 동안 퇴근 후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여 결국 다음해 승진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런 걸림돌 회계학이 이번 강의를 하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어째든 내가 어렵게 공부한 회계학이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어부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또 내가 공부했던 책을 소개도 해 주었더니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학생 중에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둘이 있다. 두 학생 모두 한국말은 물론 글도 제법 잘 썼다.

숙제를 해온 것을 보면 그런대로 논리적이고 어휘력도 좋아 칭찬을 해 주곤 하였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될수록 어려운 학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오자 이해를 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빠! 아무리 귀를 기울여 듣고 녹음을 해서 또 들어도 외국어는 외국어라 쉽지가 않아요.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하루에 책 한권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하려면 밤을 꼬박 새워야 해요“

몇 년 전 미국으로 유학 갔던 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수업시간마다 그들에게 몇 번씩 “이해가 되나요?”를 물어 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어째든 학생들과 함께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그 동안 내가 마음 속 가장 밑에 숨겨 놓았던 나의 걸림돌도 들추어 보았다.

또 그것이 지금은 디딤돌로 변신한 것도 알게 되었으니 참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진린, 그리고 장이! 힘내! 한국어가 지금은 공부하는데 걸림돌이지만 언젠가는 너희들에게 단단한 디딤돌로 변하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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