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 이야기]큰 그릇, 작은 그릇--<류영철 NH농협은행 진천군지부장>
[죽전 이야기]큰 그릇, 작은 그릇--<류영철 NH농협은행 진천군지부장>
  • 충청매일
  • 승인 2012.11.08 1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집 하늘농장(옥상에 설치)에서 키운 고추들은 왜 그리 매운지 모르겠다. 매년 고추모를 살 때마다 판매하는 분에게 “이것 매은 것 아니죠?”하며 물어 보고 사건만 키워 놓고 보면 매운고추다. 그러니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힘써 고추농사를 지어보아야 다 남들 주기 바쁘다. 이런 현상은 판매하는 분의 상술이라기보다는 환경 탓인 것 같다. 하늘농장이 옥상이다 보니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으로 인해 고추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매운 맛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째든 나와 아내는 휴일을 맞아 30여 개의 고추대를 모두 뽑아냈다. 아직 파란 채 남아 있는 고추를 버리려니 아까워 모두 따서 냉동실에 넣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겨울에 된장을 끓일 때 매운고추 한 두 개만 썰어 넣으면 맛이 칼칼해 입맛 돋우는 데는 그만이란다.

고추대를 뽑아낸 화분에는 거름을 듬뿍 넣어 흙과 잘 섞은 후 일렬로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고추대는 흙을 모두 털어서 햇볕에 바싹 말렸다. 예전 같으면 부엌의 땔감으로 참 좋았는데, 지금은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겨울 고추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으려면 빨간 불빛과 함께 “따다닥, 따다닥”하면서 타던 그 고추대의 짧은 비명들이 따스한 열기와 함께 참 좋았는데 그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여보! 진천장날 배추모 좀 사오세요. 김장배추는 안되겠지만 국 끓여 먹고, 쌈 싸 먹는 배추로는 최고일 것 같아요” “아니, 벌써 배추를 심어요?” “그럼요, 주말농장하시는 분들은 심은 지 한참 되었다는데요. 모든 것이 때가 있으니 우리도 빨리 심읍시다.”

진천장날, 장터에 나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한 노인이 부지런히 조루를 갖고 배추 모에 물을 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으로 발길을 옮겨 배추모를 살펴보았다. 좀 작아 보였다. 다른 곳으로 가려고 일어나니 노인은 나를 꼭 붙잡는다. “내가 좀 일찍 갖고 나와서 모가 작지만. 심고서 아마 2~3일 후면 땅 냄새를 맡을 것이오. 그 때가 되면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상관없다오. 아마 이놈들 크는 모습이 선생 눈에 보일 것이니 염려 말고 사가시오. 만약 문제가 있으면 내가 다 물려주리다”하며 강권하는 바람에 결국 배추모 한 판을 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화분 30여개에 배추를 모두 심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후 옥상에 올라가보니 노인 말과 같이 땅 냄새를 맡은 배추들은 작은 날개를 쭉 펴고는 기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래 들어 아내와 나는 배추에 물을 주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분명 거의 같은 크기의 배추 모를, 그것도 한 날 한 시에 심었는데 큰 화분의 배추는 크기도 크고 무성하게 자란 반면, 조그마한 화분에 심은 배추는 무성하기는 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았다.

“여보, 이 배추 좀 보시오. 큰 그릇에서 자란 놈들은 저렇게 큰데, 작은 그릇에 심은 놈들은 눈에 띄게 작으니 참 신기하오. 아마 사람도 똑 같을 거라고 생각되오. 우리사회나 가정이 큰 그릇의 역할을 한다면 우리 아이들도 저 배추처럼 크게 될 것이고, 반대로 저 작은 화분처럼 작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면 작게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오.”

아내는 옥상의 세찬 바람소리에 내말을 듣지 못했는지 한 쪽에서 화분에 물주기 바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