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옹기뚜껑--<류영철 NH농협은행 진천군지부장>
금 간 옹기뚜껑--<류영철 NH농협은행 진천군지부장>
  • 충청매일
  • 승인 2012.07.1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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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마치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집 대문에 커다란 글씨로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세요’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잠시 물건을 살펴보니 아직 사용가능한 가구며 그릇이 잔뜩 쌓여 있었다. 누군가가 이사를 가며 내 놓은 것 같다.

“여보! 빨리 갑시다. 그런 구닥다리 물건은 누가 가져가겠어요. 이젠 그런 물건에 신경 좀 끄세요”하며 아내는 내 팔을 잡아당긴다. “아니, 모두 새 것 같은데”하며 내가 관심을 갖자 아내는 뒤도 안돌아 보고 저 만치 걸어간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과소비 풍조가 만연해져 있다. 특히 새집으로 이사를 갈 때는 그 동안 쓰던 가구나 가전제품을 모두 새 것으로 바꿔 버린다. ‘새집’이라는 괴물이 오랫동안 아껴쓰던 물건에 대한 애착과 애정까지도 한 순간에 모두 삼켜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근검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서 그런지 지금도 길을 가다 버려진 물건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쓸만하다고 생각되면 집으로 가져와서 닦고 색칠하여 요긴하게 쓴다. 전에는 그런 나를 아내가 잘 도와주더니 요사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그런 행동이 구차해 보였는지, 아님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휴 살만한 사람이 더 지독하다니깐” 이라는 핀잔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작년 봄이다. 옹기 항아리 뚜껑이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운데 큰 금이 나있었고 다른 외관은 이상이 없었다.

“그래, 이놈을 가져다 접착제로 때우고 흙을 넣으면 화분으로 써도 되겠구나” 생각하고는 가져다가 휴일을 이용해 접착제로 금간 곳을 붙이고 채송화 씨를 뿌려뒀다.

몇 달 후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을 다녀 온 아내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나를 부른다. “여보! 여보! 옥상에 좀 가 보세요. 어쩜 채송화가 그렇게 예쁘게 폈을까. 색깔도 다양하고 참 예뻐요.”

그제야 옹기뚜껑이 생각나서 옥상에 올라가 보니 색색의 채송화 꽃이 둥그런 옹기 뚜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제 올라 왔는지 아내는 옆에서 한마디 한다. “여보! 이 항아리 뚜껑 당신이 또 주어 오신 것 맞죠? 하여간 못 말린다니깐. 어째든 참 잘 했어요. 이만한 옹기 뚜껑을 돈 주고 살려면 만만치 않을 텐데”하며 좋아했다.

“여보! 이 옹기뚜껑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구려. 옛말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큰 그릇은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릇 안을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오. 아무리 그릇이 크면 뭐하겠소. 속이 비어 있거나, 혹시 채워져 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다 쓸데없는 것 아니겠소? 또 하나는 금이 간 이 옹기뚜껑도 접착제로 붙이면 재사용이 가능하듯이 사람도 똑같지 않나 생각하오. 단점과 흠이 많은 사람이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해와 사랑의 접착제로 잘 붙이면 그 사람 역시 얼마든지 다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요. 그렇지 않소?” 아내는 대답 대신 나를 보고 환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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