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대신 생활비·자녀 등록금·고물가 ‘3중고’

“이제 좀 쉴 때가 됐는데 늙은 몸으로 다시 생활전선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 서글퍼요.”

지난 11일 오후 9시께 서울 서대문구의 한 정육식당. 이 식당은 인터넷에서 이른바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식당 입구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식당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최모(58·여)씨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최씨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넉 달 전.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3년 전 명예퇴직한 남편의 사업이 최근 실패하면서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과 대출 이자 등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익숙하지 않고 힘든 일이지만 딱히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식당일을 선택했다는 최씨의 왼팔에는 얼마전 뜨겁게 달궈진 숯불이 맨살에 닿아 생긴 벌건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최씨는 “식당일이 워낙 힘들어 주위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쥐꼬리만큼 작은 월급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별안간에 생활전선에 내몰린 최씨는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도 벅찬데 노후자금은 아예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최근 생활전선에 내몰린 50~6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직장에서 쫓겨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거나, 자녀의 대학 등록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고물가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경제활동에 나서는 중년 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안정적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건물 청소나 식당 등 젊은 층이 기피하는 비정규직이거나 한시적인 일자리가 대부분이라 고용의 질은 그야말로 형편없다.

특히 이런 일자리마저 한정돼 있다 보니 열악한 근무조건과 환경 등을 감수하고서라도 일터로 나서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50~60대 여성 구직자들에게 양질을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취업자는 1천9만1천명으로 전년보다 17만7천명(1.8%) 늘었다. 이 중 50대는 전년에 비해 13만명(6.8%) 늘어난 205만명이다. 50대 여성취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20대 여성취업자는 전년보다 3만명(1.4%) 줄어든 192만명으로 조사됐다. 정작 일을 열심히 해야 할 20대 여성 취업자들이 줄어든 반면 50대 여성의 취업자 증가율이 전체 여성 취업자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이다.

생활전선에 내몰린 50~60대 여성들에게 노후준비는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자녀 학비를 버느라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퇴직을 하고, 노후자금이 부족해 또 다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통합화된 지원 시스템을 갖춰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함께 노후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박사는 “일자리를 구하는 중년 여성 상당수는 비정규직이나 한시적 일자리가 대부분으로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 문제들 단순히 비정규직 대책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년여성들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 5인 미만의 영세업체거나 파견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도 어렵다”며 “최저임금 상향조정을 비롯한 법률지원, 영세사업주에 대한 세금감면과 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책들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통합화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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