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동안 거실에 가득했던 귤꽃의 향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수령이 50년이 넘은 이 귤나무는 아버지께서 병환 중에도 애지중지하였던 나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둘째 형님이 맡아서 키우셨는데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조그마한 나무에 귤들이 잔뜩 달려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곤 하였다. 2년 전 형님께서 돌아가시자 형수님께서 잠시 키우시더니 힘들다며 작년에 우리 집으로 이사를 시켰다. 금년 겨울 매서운 추위를 잘 견딘 것도 대견한데 예쁜 꽃과 좋은 향까지 선물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거실에 앉아 흰 귤꽃을 보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은 물론 둘째 형님의 모습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 뿐인가,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할 때면 이 귤나무 향기가 마치 천국의 향기처럼 내 몸을 휘감아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하는 착각에도 빠지게 한다.

지난 4월 19일 법무 연수원과 광혜원면 실원리 사이에 1사1촌 자매결연식이 있었다. 현재 용인에 있는 법무연수원이 2014년에는 진천으로 이사 올 계획이라니 금번 실원리와의 자매결연은 의미도 있고 시기적절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미리 가서 본 실원리는 높지 않은 산들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고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논과 밭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참 아름다웠다.

이장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연말에는 마을 대동계를 하고 있으며, 주작목인 배추농사는 전통방식인 품앗이로 하고 있다니 현대 속에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농촌마을이다.

결연식이 있던 날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자매결연식장으로 가보니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계셨다.

행사준비로 바쁜 이장님이 나를 보며 “일찍도 오셨네요. 준비는 하느라 했는데 시골이라 격식이나 맞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걱정의 빛이 역력하다.

“걱정 마세요. 원장님께서 마을주민들에게 불편을 줄까봐 점심시간을 피하여 식을 하는 것이나, 식과 관련 없는 공무원들과 기관단체장들을 초대하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 분의 성품을 알만하시잖아요?” 하며 안심시켜 드렸다.

얼마 후 연수원 직원들을 태운 버스가 식장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리는 직원들은 모두 간편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간단한 자매결연식이 끝나자 원장님은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직원들과 함께 밭으로 가셔서 고사리 파종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손이 얼마나 빠른지 직원들이 따라가기 바빴다.

작업 중 휴식시간에 막걸리를 가져오자, 얼른 일어나 막걸리 병을 들고는 마을 노인 한 분 한 분께 막걸리를 따라드렸다.

“저희 부모님도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저희들을 가르쳤습니다”며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원장님 모습에서 나는 하얀 귤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분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겸손하시고, 노인을 공경하며, 농업농촌을 생각하시는 진실한 모습을 보며 나는 그분에게서 우리 집 귤꽃과 같은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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