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편물 중에는 “○○학교 졸업식이 ○월 ○일에 있으니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장이나 초청장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보은이 시골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졸업식에 참석해 보면 우선 졸업생이 단출하다. 특히 초등학교인 경우는 졸업생이 10명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시학교에 비하면 오히려 식장이 썰렁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올 들어 처음 참석한 졸업식은 속리산 중학교였다. 속리산 중학교는 전국 최초의 기숙형 중학교로 여러 번에 걸쳐 언론의 초점을 받기도 했다. 준공식 때 참석하고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그 전보다 더 깨끗하고 규모화가 된 것 같다.

여러 기관장들이 함께 기념식수한 나무는 한 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굿굿하게 서 있다가 나를 보고는 반색을 한다.

식장에 들어가니 각종 금관악기로 형성된 브라스밴드의 부드러운 음악이 추운 식장을 다소나마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음악을 전공하신 분이라 그런지 식전 행사로 1시간 정도 음악회가 있었는데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음악회였다.

마지막 순서인 남자 4중창의 ‘축배의 노래’ 때에는 그 열기로 인해 참석자 모두가 온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날 정도였다.

이번 졸업생은 22명이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학생 모두에게 직접 졸업장을 주면서 꼭 포옹해 주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교육자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언제부터 시작 됐는지는 모르지만 졸업식 때마다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잘못된 뒤풀이 문화는 이곳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1년 동안 학교에서 함께 먹고 자서 그런지 학생들 모두가 한 형제자매였고 선생님들은 자애로운 부모님 같았다.

그러나 이들도 이젠 이별의 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얼굴에는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였다.

나 또한 3년 동안 근무하던 정든 보은을 이제는 떠나야 한다. 올 때부터 언젠가는 떠날 줄은 알았지만 막상 ‘인사명령’을 받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새벽마다 교회를 가기 위해 건너던 징검다리며 봄이면 벚꽃 길로, 여름에는 반딧불이의 향연장으로, 또 가을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으로 사시사철 나를 상념의 광장으로 이끌었던 보청천 둑방길이 떠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어디 그뿐인가. 삼년산성을 오르다 만난 고라니며 산토끼들, 언제부터 인가 종곡리 하늘을 도도하게 유영하던 독수리 형제들, 그리고 어둑어둑하면 강변에 나타나 즐겁게 장난치던 수달부부 역시 그리울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들의 모습을 더 많이 나의 기억이라는 사진기에 저장했어야 했는데, 그 때는 그 걸 몰랐다. 그들은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고 내 곁에 있는 줄 착각한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떠나보낼 때처럼….

하기야 그래서 인생은 늘 착각 속에 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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