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찬란한 역사든 불행한 역사든 모두를 안고 가야할 책임과 소명을 가진다.

과거는 오늘을 결정하고 오늘은 미래를 조망한다.

그런 이유로 작은 것 하나라도 왜곡되거나 간과돼서는 안된다.

기억하기조차 힘들고 아픈 역사가 있더라도 진실규명을 통해 반듯이 밝혀야 하는 것도 역사에 한부분이다.

민간인 집단 희생 민족 최대 비극

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일부 학자들은 한국전쟁이 우리 역사가 질주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주장도 일부 펴고 있다.

또 이들은 1950년은 ‘한국 근대화혁명의 시기’며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생산·창조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라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지나도록 한국전쟁은 소수 전공자의 전유물일 뿐 민족 모두의 아픔으로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 희생문제는 민족의 최대 비극이다.

이유도 모른 채 희생당한 유족들은 반공이 국시가 되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눈물을 삼키며 그날의 아픔에 대해 숨죽이도록 강요받았다.

지난 참여정부시절 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주도로 만들어진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실 규명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 6월 공식적인 조사활동을 마쳤다.

조사를 시작한지 4년2개월 만이다.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구인 진실위는 2005년 발족한 뒤 조사기간 중 논란이 됐던 과거사건 1만1천160건 중 89.5%인 9천987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7천770건(69.9%)에 대해서 진실이 왜곡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규명이 이뤄진 것은 29%인 3천187건에 불과하다.

이중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단양 곡계굴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도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6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와 연좌제의 차별 속에 숨죽이면서 살아온 유족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억울하게 희생된 부모, 형제들의 넋을 달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유족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다.

진실규명이 됐다고 하지만 예전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사의 진실규명 결정의 권고사항은 말 그대로 ‘권고사항’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미군관련 사건은 권고사항에서 미군과의 협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관한 어떤 움직임은 정부나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정부가 나선 협의나 보상 등 후속조치는 없이 유족들의 가슴만 두세 번 갈기갈기 찢어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단양 곡계굴 집단 희생자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를 위해 조사단이 단양을 방문했을 때 유족들은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명예회복과 진실규명, 보상까지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 남겨진 것은 진실규명이 전부다.

어쩌면 잊혀져가는 악몽의 시련을 죄다 까발려 놓고 유가족들의 아픔만 깊게 한 게 아닌가 싶다.

곡계굴 폭격으로 어머니와 동생 다섯, 친척 등 11명의 가족을 잃고 어렵게 목숨을 건진 엄한원씨는 진실위가 조사차 단양을 방문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50여년 간을 한 맺힌 억울함을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빨갱이로 몰릴까봐 숨을 죽이며 죽은 목숨으로 살아 왔다”며 가족들의 사진을 눈물로 더듬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뿐이다.  

유족들은 다시 외치고 있다.

“차라리 시작을 하지나 말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아픈 상처 다 들쳐 내고 이제 와서 보상은 커녕, 명예 회복도 되지 않은 채 조사를 마친다니 너무 억울하다”며 울부짓고 있다.

단양 곡계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 중 하나다. 곡계굴 사건은 영동군 노근리 사건에 비해 뒤늦게 알려졌지만 희생자 규모는 이를 능가하는 참혹한 전쟁의 대표 사례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한 영춘면과 강원도 영월군 주민 400여명이 곡계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16시간동안 계속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360여명이 숨졌다.

당시 미군이 이들을 향해 사용한 폭탄은 ‘네이팜탄’으로 베트남전에서 사용됐던 것이다.

이 폭탄은 섭씨 3천도의 고열을 내면서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들고 산소를 고갈시켜 사람을 타죽게 하거나 질식시켜 죽이는 끔직한 살상무기다.

명예회복·보상 이뤄져야

이 같은 사실을 기록한 미국 CIA의 ‘베트남전을 위한 한국전쟁의 교훈’이라는 보고서에는 미10군단이 1950년부터 다음해 1월까지 한 달간 충북을 비롯해 강원, 경북 등 3곳에서 네이팜탄을 사용해 민간인 4천440명을 숨지게 했다. 

단양 곡계굴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생존한 이들은 80세를 넘어 당시 후유증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아 왔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의 명예회복은 물론이고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보상도 받아내야 한다.

한미 양국의 우호적 관계 훼손 운운하며 마냥 덮어두거나 시간을 끌어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니다.

진실위 활동이 올 12월 마무리 된다.

이제라도 정부는 미국에 대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유족들은 바란다.

민간인 희생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진실위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해 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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