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올바른 말이란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로 정의된다.흔히 사용되는 말이라 해도 국어사전에 모두 수록되는 것은 아니다.국어사전에 등재되려면 ‘오랜 기간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하되 모든 계층에서 거부감없이 쓰이는 말’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없으면서도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말들이 있다. 이를 엄밀히 따지면 무분별한 사용이며, 그릇된 표현이다.

오해는 본질을 왜곡한다

국어사전에는 이처럼 잘못된 관용적 언어의 올바른 대체어가 존재한다.

본래의 뜻과 다른 의미로 해석되거나, 일부 세대 또는 계층·지역 등에 국한돼 사용되는 말의 범람을 막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시민단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런데 시민단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릇된 표현이란 의미다.

국어사전에 명시된 ‘사회단체(사회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민간단체(민간인으로 이루어진 단체)’로 바꿔 써야 마땅하다. 단체의 성격도 사전적 의미를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시민으로부터 대표성을 부여받은 단체로 오해할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민도 그들에게 대표성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시민을 대표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나 시민의 동의없이 단체명에 ‘국민’이나 ‘시민’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명백한 권리 침해며, 명의 도용이다.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다 보니 말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사회적 인식의 오류를 초래하게 된다.

이는 ‘기형(畸形)적 현상(現狀)’이다.

한낱 동호회(同好會) 수준의 단체들이 여론주도층으로 왜곡되면서 엄청난 사회변화적 권력을 가진 것처럼 과대포장되고 있으니 말이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별별 이름의 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고 성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창궐(猖獗)’이요, ‘난(亂)’이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커지고, 참견이 심화된다. 그 과정에서 법과 원칙은 무시되기 일쑤고, 사회적 질서와 합의도 외면된다.

그들은 이를 ‘개혁과 검증’이라 칭한다.

논리적으로 사회 각 분야의 개혁 필요성과 당위성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사안이나 인물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적용하는 잣대는 이념적 관점이나, 보편적 가치 측면이나, 국민적 정서 범주에서 균형과 접점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자신들만의 주관적 원칙과 기준을 들이대곤, 이와 합치되지 않으면 ‘부(否)’라고 낙인찍는다.

사회에는 다양한 색채의 이념·가칟목적·원칙이 존재함에도, 한 가지 색깔만이 존재한다는 ‘색맹(色盲)’의 시각과 관점을 ‘정(正)’이라 우겨된다.

통합과 상생을 주장하면서 이견(異見)을 적대시하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도 모순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대표성도 인정받지 못한 몇몇 ‘동지(同志)’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들을 ‘국민적 저항’이나 ‘국민적 합의’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자신들에 대한 개혁과 검증에는 인색하다. 외부로부터 개혁과 검증 요구도 철저히 배제한다.

남을 검증하기 위해선 자기검증이 전제된다. 개혁을 요구하기 앞서 스스로 개혁의 대상과 영역은 없는 지 살펴야 한다.

정치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를 망라한 비판의 주체를 자임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자질과 능력, 시스템, 객관적 판단기준, 정파적 중립성, 이념의 균형감, 엄격한 도덕성 등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가치의 상대성 인정해야

동의하고 동조할만한 판단과 공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자초한 시민사회의 무관심과 냉담함을 시민의 무지(無知)와 몰이해(沒理解)로 폄훼하기보다, 주민의 참여와 동의를 구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하고 주민 속에 용해돼야 한다.

가치와 기준은 상대성을 갖고 공존한다는 진리를 끝내 외면한다면 ‘고립된 자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른 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같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존 러스킨의 말이나, “자신을 더 엄격하고 무자비하게 비판하면 할수록, 남을 더 공정하고 관대하게 비판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이 이를 교훈한다.시민단체, 분명 이 사회에 실재(實在)하는 말인데 국어사전에 수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모든 계층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되어 국어사전에 당당히 등재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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