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 정치영역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여성파워의 급신장이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칠레, 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위스, 핀란드, 뉴질랜드, 스리랑카, 캐나다, 인도, 필리핀 등 세계 6대 대륙에 흩어져 위치하고 있는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21세기 들어 멀지 않은 과거에 여성이 정치 최고지도자였거나 현재 최고 정치지도자라는 점이다.

여성대통령이나 여성 정치지도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당연시되는 이러한 현상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여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처음부터 남성과 동일하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여성은 권리획득 면에서 남성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공화정 때에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18세기 말에 등장했던 유럽의 몇몇 민주정에서조차 여성은 선거를 하지 못했다. 여성투표권 부여는 19세기에 와서 비로소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참정권을 가장 먼저 허용한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이었고, 그 후 1902년에 오스트레일리아, 1906년 핀란드, 1913년 노르웨이 등이다. 우리가 흔히 정치 선진국들로 일컫고 있는 서구 국가들 중에서도 미국이 1920년에, 영국은 1928년에, 프랑스는 1946년에야 비로소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영국은 17세기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쳐 현대 의미의 시민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나라지만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남성전용 민주주의였다. 그러다가 1913년 6월 4일에 열린 엡섬 더비(Epsom Derby·현대 경마의 원조로 불리는 큰 경마대회)에서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참정권 운동가가 여성의 투표권 획득을 외치며 경마장에서 질주하는 말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 이 사건은 단순한 실수로 간주되었지만, 결국 이것은 영국 여성관련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사례를 들었지만, 현재 많은 국가들의 여성참정권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많은 희생과 활동을 한 여성선구자들의 투쟁결과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남성에게 먼저 참정권을 인정한 다음 여성에게로 이어졌고 그 간격이 길게는 110년, 짧게는 20년 정도 걸렸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해방 후 1948년에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투표권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 부분에서만은 매우 선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는 아직도 여성의 참정권 행사가 그리 흔치 않다. 쿠웨이트가 2005년에 와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였고, 레바논의 경우는 초등교육을 받는 여성만이 투표할 수 있다.

걸프 국가들 중에서는 바레인, 카타르, 오만, 쿠웨이트 여성들만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는 아직 여성의 투표권이 없다. 

여성들이 선거에서 한 표를 던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매우 획기적인 것이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이것은 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적 차별을 완화한다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투표권을 갖는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나 관행이 붕괴되었고, 또한 이것은 정치의 장뿐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많은 영역에서 성평등의 실현으로 이어져 왔다. 앞으로도 이것은 여성권한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것이 바로 이번 6·2선거에서 여성들이 투표를 해야 하고 여성들이 많이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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