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도피

“부처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전 제비노릇을 할 인물도 못되고, 성격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춤판을 무대로 폭력조직을 만드는 게 적성에 맞습니다. 마누라 뺏긴 복수도하고, 불쌍한 사람 구해도 주며, 이 풍진 세상을 흐드러지게 살아볼까요?

주먹으로 휘젓고 사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들은 이야기 안 해도 다 아시겠지만 얼마나 속 시원하게 처리했습니까? 사실 말이 났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게 어디 제가 할 일입니까? 당연히 부처님이나 먹물 먹은 인간들이 해결해야할 일 아닙니까? 내 코가 석자나 빠진 놈이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제가 나섰겠습니까?

부처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도대체 전 어쩌라는 겁니까? 여기서 죽을까요? 죽는 다는 건 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라도 죽은 뒤에 귀찮게 하시는 건 아니겠죠? 살아서도 오라 가라 하는 데가 너무 많아서 죽을 지경인데, 죽어서까지 이것저것 시비를 걸면 정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진창은 얘기가 자꾸 불경스럽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기분으로 불상을 쳐다본다. 부처님도 다소 불경스럽다고 생각하는지 마땅치 않은 표정이다. 작은 눈이 더 작아진 모습이다. 그렇지만 속은 후련해졌다.

“부처님!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선택권을 제게 주지 말고 당신이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하다. 신혼여행을 온 부부들이 한패 몰려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혼부부들이 사진촬영을 하느라 떠들썩하다. 행복에 겨워하는 소리다. 

‘난 이렇게 슬픈데 저들은 저렇게 즐겁다니!’

행복한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처럼 시끄럽게 들린다. 그만 일어나자. 애초부터 무슨 결론을 기대하고 빌었던 건 아니었다. 법주사를 나온 진창은 문장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공기가 다르다. 공기가 다르니 기분도 변한다. 이런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속리산을 찾는 것이다. 아주 멀리 멀리 떠나온 기분이다.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집이 있지만,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는 이별을 한 기분이다. 노송이 우거진 숲 사이로 푸르디푸른 물이 보인다.

호수가 나타난다. 푸른 숲과 어우러진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다. 저 쪽 산모퉁이에 무엇이 움직인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타박타박 걸어오는 사람은 스님이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스님이 여자란 걸 알 수 있다.

파르라니 깎은 박사머리가 밀짚모자 속에 감춰졌지만 틀림없이 여자다. 가까워질수록 여승은 윤곽이 뚜렷해진다. 곱상하게 생겼다. 스무 살 남짓해 보인다. 하얀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신고, 잿빛승복을 단정히 입은 여승은 진창이 옆을 무표정하게 지나간다. 진창은 지나간 여승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저 여자는 왜 그랬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머릴 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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