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만명에 달하는 이명박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을 두고 아직도 말들이 많다.

누구를 위한 사면이냐는 것이 핵심이다. 사면은 죄를 용서해 형벌을 면제하는 것이다. 군주국가시대에도 사면이 시행됐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권자의 자비(慈悲)인 셈인데, 사면을 하려면 필요성이나 합리성 등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면은 전혀 이러한 이유를 충족하지 못해 사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면이 국민대통합과 경제살리기의 차원에서 행해진 특단의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사면 대상에 포함된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 명분은 설득력을 잃는다.

역대 대통령들도 대규모 사면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광복50주년 때 700만명을,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정권교체 기념으로 552만명을,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광복60주년 때 422만명을 사면했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6월4일 취임 100일을 맞아 282만명을 사면했다.

사법권 남용 비판 이어져

김영삼이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면조치를 단행할 때마다 특혜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운전면허취소 등 생계형을 구제하기 위한 사면에 큰 목적을 뒀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임기 6개월만에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인 이번 사면은 어떠한가. 대상자 34만명 중에 32만명이 징계공무원이고 나머지가 정치인과 경제인이다.

공무원의 경우 업무를 보다 훈계 등 가벼운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니 일을 더 잘하라고 멍에를 벗어줬다고 치자.

그런데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거물급 경제인이 사면대상에 포함된 것에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다.

속된 말로 이들은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범법자 신분에서 벗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을 자청하고 있는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공금 693억원을 횡령하고 1천3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조5천억원대의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처해졌다.

이들의 사면을 국민 누가 납득하겠는가.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일벌백계의 사례로 삼아도 시원찮은 부정한 사람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그는 보복폭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경제사범이 아닌 폭력사범으로 분류된다.

그러니 국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법치(法治)를 비아냥대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이번 사면에 비난을 퍼붓자 이 대통령은 “욕 얻어먹을 줄 알면서도 했다”고 말했다. 그룹총수인 이들이 투자를 늘려 경제를 살리는데 한 역할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이 기업에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이 대통령의 기대가 크게 빗나간 모양이다.

차명진 대변인은 지난 주 논평을 통해 “경제를 살리라는 이유로 욕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에 급급한 기업인들이 꽤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투자 재촉 우스운 모양새
 
박희태 당대표는 하루 뒤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돼 투자를 안한다고 하는데 재벌들은 몇십조원씩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한다”며 “8·15사면은 경제인들이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투자를 좀 하라는 의미였는데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말고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투자를 재촉하고 있다.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여당처럼 기업도 즉흥적으로 투자계획을 내놓을 것 같은가.

투자를 하더라도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지고, 잘못됐을 경우 최소한 투자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한번 더 짚어보고 또 검토하는 게 기업경영의 기본이다.

사면한지 몇 일이나 됐다고 빨리 돈을 풀라며 기업에 칭얼대는 여당의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다.

이는 결국 이번 사면이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상실했다는 증거다. 잘은 몰라도 기업이 돈을 풀어도 장기계획을 세울 것이다.

정부여당이 채근을 하니 시늉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내놓을 수 없는 노릇은 아니지 않는가.

어찌됐든 이번 사면은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하고 욕만 먹은 생색내기용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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