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이 7일 “광우병 발견 시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잇따라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상황 모면용 ‘임기응변’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미 공개된 한·미 협상 결과로만 봐도 이 같은 공언(公言)은 사실상 ‘공언’(空言)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권이 고심 끝에 꺼내든 ‘금수(禁收) 불사’ 카드의 이면에는 오히려 ‘협상대로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의중이 강력히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 “건강 위협 시 즉각 수입 중단”
이명박 대통령은 7일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소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 날 취임 후 첫 시·도 업무보고 차 전북을 찾아 “개방으로 인해 국민들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민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광우병 논란 대처와 관련해 최근 불거진 ‘콘트롤 타워 부재’ 비판을 의식한 듯 “국가의 존재 의의는 국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일단 모든 음식점과 학교·병원·군대 급식 등에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각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해 농수산식품부와 함께 검역에 나서게 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수세 몰린’ 당정도 ‘보조’ 나서
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맞춰 ‘수입 중단’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 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광우병 발생 시 조사단을 미국에 파견하겠다”며 “문제가 발생되는 즉시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그러면서도 “광우병 소고기가 수입될 확률은 제로”라고 단언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역시 이 날 열린 청문회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설령 통상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그러나 “미국에서 광우병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는다”며 “청소년들과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라고 ‘수입 중단 약속’의 ‘배경’을 설명했다.

▶수입 중단은 한국 정부 ‘권한 밖’
그러나 이 대통령과 강 대표, 정 장관의 ‘수입 중단’ 발언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 내용에 따르면,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협상문 수입위생조건 일반요건 5조는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리고 협의한다”고 명시했다.

역학 조사의 주체는 엄연한 ‘미국 정부’며, 우리 정부는 ‘통보’만 받도록 돼 있다. 따라서 “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강 대표의 발언은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협상 위반’이 될 수 있다.

▶‘금수’ 결정 주체는 OIE… 사실상 미국 대변
협상문은 또 ‘수입 중단’ 기준에 대해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로 한정했다.

결국 OIE가 수입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인 데, 문제는 OIE가 사실 상 미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단체라는 점이다.

OIE는 과학적 기준에 따라 광우병 위험을 판정하는 ‘국제 기구’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농업 담당 정부 전문가가 대표로 파견되는 ‘협의 기구’다.

특히 광우병을 다루는 ‘육상동물위생규약위원회(Code Commission)’는 미국 농무부(USDA) 소속인 알렉스 티어만이 6년 째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실상 ‘VOA’(Voice of America)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

실제로 2005년 OIE는 원래 5단계였던 광우병 평가 기준을 3단계로 두루뭉수리하게 축소했다.

뿐만 아니라 “광우병이 발생했다 해도 그 원인이 타국에 있음을 밝히고 제거하면 ‘광우병 위험국’이 아닌 ‘위험 통제국’으로 본다”는 조항까지 집어넣었다.

이런 OIE가 유사시 미국의 등급을 조정해 ‘수입 중단’을 결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 마디로 ‘아마추어리즘 통상 외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 역시 이 같은 맹점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것은 납득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수입 중단’ 결정권 얻는 길은 ‘재협상’ 뿐
결국 현재 협상 결과대로라면 한국 정부는 유사시에도 수입 중단을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의 공언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재협상 뿐이다.

그러나 재협상 여지가 있느냐를 두고서는 당정 간에도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6일 고위 당정 협의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경우 미국 정부와 재협상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청와대는 “재협상은 없다”며 선을 긋고 나섰다.

반면 안상수 원내대표는 당정 협의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재협상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강재섭 대표가 7일 국회 연설에서 “광우병 발생 시 재협의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한국 내부의 이 같은 논란과는 무관하게,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합의된 한·미 소고기 협상 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현재의 합의문 틀 안에서도 얼마든지 소고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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