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김언년씨 어버이날 국민포장 수상

   
 
  ▲ 7일 어버이날을 맞아 국민포장을 수상한 김언년씨와 시어머니 이근순씨, 남편 진창수씨.  
 

“자식된 도리로 내 한 몸 성할 때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인데 더 잘 모시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여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10여년 전부터는 치매를 앓는 시모를 농사일과 병행하며 정성껏 섬겨 효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효부 김언년씨(53·여·진천군 문백면 은탄리)가 국민포장 수상 사실을 알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쑥스럽게 말을 꺼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는 가깝고도 먼 사이다.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도 늘 부딪히고 엇갈리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 하지만 김씨는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시엄마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는 사람. 이제는 ‘엄마’라는 호칭이 더 편하다.        

김씨는 치매에 걸린 시엄마의 곁에서 묵묵히 손과 발이 돼 주면서 지금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짜증 한번 내 본 일도 없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이웃 주민들도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들 뒷바라지를 묵묵하게 해 온 김씨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30년 전 꽃다운 나이 23살에 3남매 중 둘째아들인 남편 진창수씨(57)에게 시집온 김씨는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셔왔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위암판정을 받고 6개월간의 병상생활과 수술 3개월 후 돌아가시자 시엄마는 여위시기 시작했다. 거동도 불편해 집밖을 나가기도 힘든지 오래. 똥오줌 못 가려 며느리 볼 낯이 없는지 제정신이 돌아올 때면 몰래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치우려 애쓴다. 그렇게 시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 벌써 14년 전이다.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의 손발이 돼 식사 수발에서부터 용변을 받아내는 일까지 도맡아 하며 지금까지 병간호를 해왔다.

김씨는 “처음에 다정하던 시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남편에게 심한 말을 하시면서 예민해 지시고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해 너무 놀라고 근심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눈물을 보였다.

10여년 동안 돌봐온 시엄마지만 때론 힘들기도 하다. 그럴 때면 김씨는 시엄마가 베풀어 준 좋은 모습만을 기억하며 더 야윈 엄마의 거친 손을 잡고 파리한 몸을 가슴 깊숙이 끌어안는다.

날마다 목욕을 하시며 항상 주변을 청소하실 정도로 깔끔하시던 시엄마가 대소변도 가리시지 못하고 스스로 씻으시지도 못하는 모습을 볼 때 메여오는 가슴 한구석을 움켜잡고 그리운 시엄마의 손길을 추억한다.

바쁜 농사일로 집안 살림을 많이 할 수 없었던 며느리 김씨를 위해 시엄마는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1남1녀의 손자들도 다 키워냈다. 친딸처럼 항상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시엄마는 며느리 생일 때면 소고기를 사서 매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통닭 한마리를 손아귀에 쥐어주곤 했다.

거기다 매년 철마다 읍내에 나가 고르고 고른 고운 옷과 용돈을 며느리 손에 쥐어주면서 남몰래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항상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집안 살림에 이웃들 챙기랴 바쁘셨던 그런 시엄마가 이제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파자마에 메리야스 차림으로 매일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다.

어느새 시엄마는 들에 일하러 나갈 때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밥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의 모습처럼 며느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한 번은 너무 병세가 심해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갈 때 지금 가시면 영원히 집에 돌아오시지 못하시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과 무서움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며 시엄마의 손을 꼬옥 잡았다.
‘효부 없는 효자 없다’라는 속담처럼 효부 김씨 못지않게 남편 진씨도 효자다.

남편 진씨는 지난해 10월2일 대한노인회 진천군협의회에서 주는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진씨는 “요즘 세상에는 시부모 모시기 싫어서 장남이 결혼 기피대상 1호라는데 내 아내는 장남도 아닌 내가 시부모를 모시겠다고 했을 때 아무말 없이 받아주고 지금까지 나보다도 지극정성으로 어머니 곁에서 돌봐줘서 너무 고마우면서도 그동안의 고생에 미안함도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엄마가 나에게 해준 정성 하나 하나를 갚을 수 있도록 가시는 그날까지 남은 여생 고생 안하시고 좋은 기억만을 드리고 싶다”며 소박한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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