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상대방의 행동을 비하할 때 ‘쇼한다’고 표현한다. 정치권을 대상으로 이 말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행태를 보노라면 이보다 더 적합하고 적절한 말은 없어 보인다.

정치인들은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더 상스럽고 저속한 말을 붙여도 드러내놓고 반박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느끼고 있고 몸소 체험하고 있어서다. 우리 정치사에서 쇼는 많았다. 대부분 진실과 동떨어진 음해나 비방이 목적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002년 치러진 16대 대통령선거 때 ‘병풍(兵風)’이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했다.

병무브로커 김대업씨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의혹을 제기한 것을 두고 붙인 단어다. 한나라당이 허위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징집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병역만큼 애증의 관계에서 밀접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음해·비방소재 내용

당시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여 선거 두달 전에 “근거가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연씨가 병역기피자로 각인된 상황에서 그런 자식을 둔 대선후보가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표는 계속 이회창씨를 따라다녔고 결국은 대선 재수생이었던 그를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이 회오리의 한 가운데 있었던 정연씨는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서 봉사활동까지 하는 등 나름대로 진실성 회복에 나섰지만 많은 국민이 그가 “쇼한다”고 비아냥댔다. 정치권의 모든 움직임은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쇼로 치부될 정도로 우리 정치권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올 12월 실시되는 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황당한’ 쇼가 펼쳐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선거와 다른 점은 누가 주연이고 줄거리가 무엇인지를 콕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고 공통점은 천박하고 유치한 대사(臺詞)이다.

한나라당의 ‘빅2’로 불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기싸움은 국민에게 허탈감을 주고 있다. 일국(一國)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과 그들의 참모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치고는 어이가 없다.

이명박 전 시장은 자신의 형, 그리고 처남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은 하지 않고 “그들에게 물어 보라”고 떠넘기고 있다. 그의 처남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이 수사를 하겠다고 나서자 ‘공작정캄라고 오히려 반발했다. 검찰이 먼저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은 처남에게 고소 취하를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전 시장의 처남이 검찰 고소를 취하하자 “왜 취하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고소를 하든 이를 취하하든 속된말로 엿장수 마음이다. 왜 제3자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하나. 기대했던 반사이익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아쉬운 마음에서일까.

고소·고발이라는 게 원래 처벌을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하는 것인데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누가 대상이든 간에 처벌을 원하는지 기가 막히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양 캠프의 꿍꿍이속셈을 다 알고 있음이다.

오고가는 말 천박하고 유치

범여권으로 불리는 진영은 어떤가. 너도나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동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이렇게 예비후보가 많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차피 경쟁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덤벼드는 꼴이다.

그만그만한 인물들이니 만큼 운이 좋아 공식 대선후보로 뽑히면 금상첨화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후일 도모를 위해 일찌감치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누가 추가로 대선후보군을 자청할지 관심사다.

어떤 정당은 1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 때문에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또 통합과정에서 비례대표들이 국회의원직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으면서 탈당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게 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권이 국민에게 보여주는 해괴한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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