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단체가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의뢰해 전국 24개 도시 성인 남녀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94.9%가 경조사비로 가정경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한해 평균 경조사비 지출액은 52만2천원이며 한번에 내는 경조사비 액수는 평균 2만9천425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결혼식·장례식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결혼식 축의금은 4만∼5만원을 내는 사람이 전체의 57.5%로 가장 많았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기혼이 미혼에 비해, 40대 이상이 20대와 30대에 비해 높았다. 이는 자녀 결혼과 부모님의 장례식 등을 감안해 나이가 들수록 애경사를 더 챙기고 있다고 해석된다.

또 결혼축의금은 1만∼3만원의 경우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미혼이 기혼에 비해, 20대가 40대 이상에 비해 높게 나타났는데 축의금의 차이는 경제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 조사결과와는 달리 실제 직장인들이 부담하는 경조사비의 지출규모는 더 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축·조의금을 내지 않을 수 없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을 경우에는 당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성인 95% 가정경제부담

요즘에는 청첩장과 부고를 내지 않더라도 신문에서 결혼·부음을 보고 알아서 챙겨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할 수도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른 뒤 혼주·상주를 만날 경우에는 축·조의금을 내지 않은 것이 찜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불황의 여파로 봉급은 상대적으로 쪼그라들고 있지만 빚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경조사비를 주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 직장인들의 경조사비에 대한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 이상 전국 가구의 경조비 지출규모는 한 달 평균 3만8천188원으로, 연간 45만8천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한국은 축하객이 많을수록 더 기쁘게 생각하고 조문객이 많을수록 조사(弔事)는 덜 슬프다고 믿는다. 게다가 한국인들의 의식수준은 축하객과 조문객이 많아야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망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 경조문화(慶弔文化)는 어떤가. 한국과 달리 경조사는 아주 친한 사람만 제한적으로 초대하는 것이 관례다.

일본인들은 경조사에 친척과 친구, 회사동료 등 모든 지인을 초청하지 않는 대신 아주 친한 사람만 초대하고 참석자에겐 답례품을 준다. 축의금은 보통 3만∼7만엔 정도며 부의금은 축의금보다 적은 1만엔 정도를 낸다.

중국은 축의금은 내지만 부의금은 내지 않는 것이 이색적이다. 부의금을 내지 않는 것은 축하할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축의금은 우리 돈으로 2만∼3만원 선이다.

서양에서는 결혼식의 경우 신부 친구들이 ‘샤워 파티(shower party)’를 여는 데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샤워’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친구들은 토스트기, 수건 등 신부가 필요한 저렴한 물건을 구입해 전달하는 것이 풍속이다.

반면 장례식에서는 카드나 꽃을 주고, 필요한 경우 1만원 정도의 돈을 모아 전달한다. 특히 서양은 카드나 명함문화가 발달해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상을 당한 사람에겐 카드 또는 명함으로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

또 장례식 때 받은 조의금을 기부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장례식 때 우리나라와 같이 조의금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식장 밖에 마련된 모금함에 넣기 때문에 누가 얼마를 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돈은 불우이웃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직장 동료의 가족이 암 등으로 사망하면 돈을 걷어 ‘지금 모금하는 돈은 암 정복을 위해 수고하는 암 센터로 보내질 것입니다’라는 공지를 함께 받게 된다고 한다.

외국의 경조사비 지출 사례

외국의 이런 경조문화와는 달리 한국처럼 애경사를 철저히 챙기지 않을 경우 선거직에 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대도시보다는 시골로 갈수록 애경사 참석여부를 더 따진다. 정치인들에게 경조사비는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챙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도하게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담스러울 정도라면 재고해야 한다. 빚을 내면서까지 애경사를 챙겨야 하는 것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병폐 중의 하나다.

한국만의 독특한 경조문화는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21세기에 버려야 할 대상임은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경조문화는 상호부조(相互扶助)라는 개념에서 의미가 있고 장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이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과도한 경조문화는 줄이거나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둬야지, 체면치레형이거나 과시형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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