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나 검사는 법을 어겼는지를 판단할 뿐 죄를 가려내진 못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법은 애초부터 죄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범재판에 회부된 일본의 관료와 군인들은 자신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법적 논리에 의하면 자신들의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원자폭탄 투하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죽인 미국 측의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자신들에게도 죄가 없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분명 죄가 차고 넘친다. 승자를 벌하지 못할 뿐 전쟁은 그 자체가 죄악인 까닭이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충청매일] 오래 전 고인이 된 친구가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건 아직도 그가 내 삶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내 사주팔자에 균열을 불러온 사람이다. 피해의식에 짓눌려 있던 내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걸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가 마치 가슴이 따뜻하고 푸근한 천사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 수가 적고 잘난 체를 하지 않을 뿐 감수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낙천적인데다가 자의식이 강해서 남의 충고나 지적을 귀담아 듣지 않는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동안거에 접어들어 작업하기 좋은 때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멀쩡하게 길을 걷던 사람이 느닷없이 158명씩이나 한 자리에서 압사당하는 일을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참사를 당한 사람들의 영정이나 위패가 사라진 분향소 하며 사망자의 명단공개를 두고도 개인정보보호니 2차가해니 하는 말들로 본말이 전도되는 사이 유족의 슬픔은 이리 찢기고 저리 차이는 모양새다. ‘특별수사본부’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여 구조 활동을 벌인 119소방서장에게 현장지휘가 미진했다는 이유로 법률적 책임을 물어 입건하였다. 늘 하던 대로
그리기는 단순히 평면 위에 물감을 칠하는 유희를 넘어 의식과 무의식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때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작의적인 느낌이 앞서 타인과의 교감은 물론 솔직한 감정표현을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때로는 계획에 없는 표현이 더 솔직할 수 있는 건 감성의 전달이 사전에 의도된 절차나 방법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의 표현과 전달을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에 적합한 표현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처럼 예술표현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의 일치는 작가의
[충청매일]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아쉬운 건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크기나 제작 기간에 주목하는 점이다. 두 그림을 그리는데 도합 10여년 이상의 세월 동안 혼자서 붓질을 하다 보니 목의 통증이나 눈의 질병 등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겪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그림이 위대한 이유는 아닐 터이다.‘천지창조’는 구약성서 ‘창세기’를 토대로 폭 14m, 길이 41m 가량의 천정에 그린 초대형 벽화다. 그 중에서 가장
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런 나에게 칼럼을 써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선뜻 답을 못하고 망설이던 중 이미 오래 전부터 미술을 통해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미술작품을 전시한다는 건 관객을 의식한 매우 전략적인 표현행위다.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해왔던 것이다. 그런 내가 쉽사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생각이 얕고 글의 완성도가 부족하여 부끄러움을 겪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서다.글이란 오랜 동안 숙련된 문장과 어휘를 구사할 줄 알아야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다. 하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