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조선의 궁술’에는 편사에 관한 아주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편사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세합니다.

그것을 읽다 보면 1천년이 지난 뒤에도 ‘조선의 궁술’을 토대로 재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당시 한량들은 편사에 집착했을까요?

그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활터의 풍속 중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활쏘기 형식이 편사였고, 그것이 오랜 내력을 지녔으며 조선인의 자부심을 추켜준 행사였음은 분명합니다. 한편 나라는 망했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의 자부심을 지켜주던 행사는 당장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은 한량 당사자들이 더욱 잘 알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난 5천 년간 변변한 기록이 없던 활쏘기를 조명하여 ‘조선의 궁술’이라는 걸작을 남기고, 거기에 언제든지 기억할 수 있도록 편사 항목을 넣어서 자세히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지만 기록은 어디까지나 기록일 뿐입니다. 편사의 정황 전체를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성낙인 옹을 만나서 몇 마디 여쭈어본 순간에 발견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대중회 전날 고사를 지냈다고 했는데, 형식은 어떠냐고 했더니 간단히 밀초를 켜놓고 고사를 지내고 그 밀초를 15등분하여 편사원끼리 나눠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밀은 벌집을 녹여서 만든 것으로, 활터에서는 시위에 칠하거나 죽시를 닦는 데 쓰입니다. 이런 내용은 기록에는 없어서 당시 참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성낙인 옹의 존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에 아무리 자세한 기록이 있어도 그것을 겪은 사람이 증언해주지 않는 한 그것은 단순한 기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기록이 현실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되는 것은 그 기록의 주인공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성낙인 옹 한 명으로 인하여 ‘조선의 궁술’ 속에서 화석으로 영원한 잠에 빠질 뻔한 편사가 우리의 살아있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때로 이런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로 하여 기록이 무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선의 궁술’에 보면 정순 경기가 시작될 때 설자리에서 무겁으로 신호를 보내는데, 그때 “정순 간다!”고 외칩니다. 그런데 성낙인 옹은 “정순 나간다”로 기억을 했습니다.

몇 차례 확인을 했는데도 성 옹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조선의 궁술’ 대로 “정순 간다!”고 해야 하는가? 성 옹의 기억대로 “정순 나간다!”로 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재현하려는 복원자가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생생한 전통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조선의 궁술’이 아니라 성 옹의 기억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온깍지 편사에서는 “정순 간다!”가 아니라 “정순 나간다!”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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