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석의 흔들의자]어버이날
[서강석의 흔들의자]어버이날
  • 충청매일
  • 승인 2021.04.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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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아이구구! 아이구!”

시골 처갓집에서 하룻저녁을 보낸 어느 날 한밤중이다. 장모님께서 관절통으로 잠을 못 이루시고 뒤척이신다. 외마디 신음이 쓸쓸히 돌아 사라진다. 오늘 밤만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기에 웅크려 누우신 장모님의 모습이 가슴을 후빈다. 마음이 아리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다.

“자네만 괜찮으면 댜! 나는 괜찮어.”

장모님께 안부를 여쭈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속으로는 저렇게 앓고 계시면서 말이다.

아침 식사 후 시골집을 나설 때쯤이면 땅에 닿을 듯 구부정한 허리를 이끌고 주섬주섬 감자며 마늘이며 들기름을 바리바리 보자기에 싸신다. 그리고는 마루 끝에 밀어 놓으신다. 슬그머니 거두어들이는 손등에 툭 불거진 혈관과 일그러진 손마디가 보따리보다 몇 배 크게 가슴에 스민다. 손마디 사이로 고왔던 새색시의 수십 년 세월이 지나간다.

장모님의 세월은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힘겨운 농사꾼이었으며 코흘리개 육남매의 엄마였다. 동이 트면 갓난애를 들쳐 업고 아수바라기를 걸리며 고추밭 고랑에 매달렸고 논에 물꼬를 트러 이리저리 분주하다가 또 어느새 논두렁에 새참을 해 날랐다. 저녁노을이 먼 산 뒤로 애처로울 때면, 어머님은 저녁밥 짓는 아궁이에 된장찌개를 올리시며 모락모락 정겨운 굴뚝연기로 식구들을 부르셨다.

어느 날 농사일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흘러내린 논두렁 흙을 삽으로 퍼 올리고 밭에 들깨모종도 심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숨이 턱에 닿았다. 젊은 나이였고 불과 네댓 시간이었는데도 엄청 힘이 들었다. 장인 장모님은 이런 일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평생을 하셨고 마음고생은 덤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평생을 자식들의 삶으로 사셨는데 온몸이 망가진 지금에도 ‘너희들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다’라고 하신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가?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마도 자신이 불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삶과 그 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고 불효자를 면할 수 없다. 부모님을 생각한다고 효자가 아니라 효자로서 해야 할 행동을 했을 때 한 만큼 불효를 면할 수 있다. 생의 전부를 헌신하신 부모님처럼은 아니어도 좋다. 효행은 간단한 안부 인사부터 헌신적인 효행까지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 많은 효행을 다 행한다 해도 부모님의 일그러진 손마디 마디에서 배어나온 사랑에는 어림도 없다. 부모님 가슴 가슴에 맺힌 사랑의 크기에 견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식은 효행커녕 나 살기 바쁘고 나 놀기 바쁘다. 부모님의 삶은 자식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틈틈이 정성을 들여 부모님께 좀 더 큰 위안과 행복을 드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부모님처럼 평생은 아니더라도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 정도는 부모님께 헌신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부모님을 일찍 보내드렸기에 부모님 삶의 무게에 담긴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 것인지 잘 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 아무리 그리워하고 눈물지어도 헤어날 길이 없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내 삶만 살았다. 지척 처갓집에 장모님은 그렇게 홀로 살고 계셨다.

며칠 전 장모님 사십구재를 올려 드렸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나락을 걷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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