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춘천 활량 중에 김성인 접장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신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교지 사진을 몇 장 보내왔습니다. 교지는 많이 본 터라 별 기대를 않고 펼쳤는데 끝 부분의 깨알 글씨가 저의 눈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보통 교지의 경우는 무슨 벼슬에 임명한다는 내용과 날짜 적는 게 전부인데, 특이하게도 이 교지에는 맨 왼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육량전이 몇 보 나갔다고 적은 것입니다. 아주 특이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무슨 내용인가 판독을 해보니 영조 때의 김수정이라는 분이 무과 출신 장군이었는데, 무슨 시험에서 육량전을 몇 보 쏘아서 승급했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국궁논문집10』) 

육량전은, 조선 시대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썼던 것이고, 이것을 제대로 쏘느냐 마느냐가 무과 당락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화살이었습니다. 요즘 활터에서 많이 쓰는 대나무 화살은 무게가 보통 7돈 내외입니다. 그런데 육량전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여섯 냥입니다. 그것도 화살촉의 무게만 6냥입니다. 살대와 오늬까지 다 갖추면 아무리 낮춰 잡아도 8돈은 나가고 10냥까지도 나갑니다. 지금 한량들이 쓰는 화살의 10배 이상 되는 무게입니다. 화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무게입니다. 투창과 비슷합니다.

이걸 쏘려면 활은 도대체 얼마나 센 것으로 쏴야 할까요? 요즘 활터 사람들은 40호(lb) 정도에서 강해야 60호 정도를 씁니다. 40파운드를 옛날 계량 단위인 근수로 환산하면 30근 이 되고, 60파운드는 45근입니다.

2019년에 육량전을 쏘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육량전은 1894년 무과 폐지 이후 우리 곁에서 사라진 화살입니다. 유물이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활을 쏘는 후손으로서 자괴감이 많았는데, 마침 이쪽으로 자료를 꾸준히 찾던 이건호(디지털 국궁신문 운영자) 접장이 일본 측 자료를 바탕으로 영집궁시박물관의 협조를 얻어서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20년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육량전을 부산, 청주, 평택 세 곳에서 시험 발시를 했는데, 그때 가장 강한 활이 70호 정도였고, 그 활로 쏘았을 때 육량전은 60미터를 조금 더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무과에서 육량전의 기본 거리는 100보였고, 이것은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0미터 정도 나옵니다. 오늘날 활터에서 한량들이 쏘는 가장 센 활로 육량전을 쏘았는데, 옛날 무사들이 연습 삼아 쏘던 기본 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육량전이 얼마나 대단한 화살인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거운 화살을 보내기 위해 그들이 쓴 활이 얼마나 센 것인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육량전을 쏠 때 쓰는 활을 정량궁이라고 합니다. 정량궁은 활채가 각궁보다 더 크고 두텁습니다. 그래서 장사가 아니고는 당기기 어렵습니다. 앞서 실험해본 방식으로 육량전을 100보까지 보내려면 적어도 100근 가까운 탄력을 내는 활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그런 활에 대한 기록이 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옛 책에 자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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