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장학회인 사계가 사라지기 전, 한량들의 일과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루 생활을 할까요?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서 활터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각종 과목에 해당하는 활쏘기를 선배들에게 배웁니다. 활터에는 이미 등과하여 벼슬하는 선배들이 많이 나와서 훈련을 합니다. 그들로부터 합격에 관한 노하우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전국 사법의 통일성을 가져오는 원인입니다.(‘활쏘기의 나침반’)

그런데 1년 내내 이 힘든 일만을 하며 지낼 순 없습니다. 당연히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마련됩니다. 우선 상을 걸고서 활쏘기 시합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미 등과하여 벼슬을 한 자리 한 사람이나 퇴임한 원로 관료들이 활터에 나와서 후배들의 활쏘기를 구경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제안하여 한량들이 활쏘기 시합을 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상이 따릅니다. 그런 상 가운데 고풍이라는 특별한 행사도 있습니다.

고풍은, 원로 장신들에게 후배 한량들이 “고풍 올립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원로  대신은 종이에 시나 격려 글을 써서 한량들에게 돌려줍니다. 한량들은 그것을 받아서 신나게 논 다음에 읍내로 나가서 술 한 잔 하는 것입니다. 그 비용은 다음날 고풍을 써준 사람이 지불합니다.(‘전주 천양정사’) 당연히 이것은 왕실에서 행하던 관례가 민간으로 내려온 것이고, 정조 임금이 행한 고풍 관련 자료가 지금껏 전합니다.(‘한국의 활과 화살’)

지금은 150m 붙박이 과녁만 있지만 옛날에는 마사도 했습니다. 둘 다 실전이 필요한데, 사냥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량들은 들로 산으로 사냥을 다닙니다. 습사도 하고 먹을거리도 얻으니, 일거양득이죠. 이렇게 사냥이라도 나갈 양이면 자연히 많이 잡는 사람에게 상이 주어지고, 온 동네가 시끌벅적해지기 마련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들로서는 이들의 행태가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한량’이라는 말에는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논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량이라는 말에 왜 그런 떫은 뜻이 끼어들었는지 이제 또렷이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이 한량이 지금껏 남은 곳이 활터입니다. 활터는 옛날부터 한량들의 근거지였고, 그들의 행동양식이 아주 잘 살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활쏘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활은 중독성이 강해서 요즘도 활터에 가보면 낚시꾼들이 많습니다. 낚시가 중독성이 강해서 온 바다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활을 배우면 낚시 도구를 모두 버립니다. 응마궁기(鷹馬弓妓)라고 예부터 잡기의 서열을 매길 때 쓰는 말입니다. 매사냥, 말타기, 활쏘기, 계집질의 순서대로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입니다.(‘활쏘기 왜 하는가’)

활 쏘는 사람에 대한 이 같은 인식 때문에 용어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 있습니다. ‘활량’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한량의 변형인데, 한량의 안 좋은 뜻을 피하고, 활 쏘는 사람임을 특별히 강조하려고 만든 말입니다. 엄연히 사전에 등재된 말이고, 인천지역에는 이 말이 아직도 또렷이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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