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후 달라진 학교 풍경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새 학년이 들어서면서 최근 학급장 학부모가 학급 학부모에게 모임 소식을 전했다. 학부모들과 모인 자리에서 학급장 학부모는 4~5월 집중돼 있는 현장체험학습과 운동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부모들에게 “현장체험학습과 운동회에도 아이의 도시락만 보내야 하고, 담임교사에게는 도시락도, 음료수도 일절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는 현장체험학습과 운동회를 앞두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을 공지했다. 현장체험은 아이의 도시락만, 운동회는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때문에 물 등 음료수만 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행여나 담임교사 등에게 음식물을 전달하는 일은 없도록 하고, 현장학습에도 부모 동행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각종 행사가 줄지어 있는 4월부터 학교 현장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지난해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금지에관한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교사는 물론 학부모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운동회나 소풍 때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여 음식을 먹고 이야기 하는 풍경은 옛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됐다.

20일 충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도내 학교들은 4월 중순부터 현장체험학습, 소풍을 진행한다. 학년별 소규모 단위로 진행되는 현장체험학습은 지역 인근 유적지와 공원, 타 지역 등으로 나눠 진행된다.

운동회의 경우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 실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후 학부모회에서 소풍과 운동회 등 학교행사에 간식 등을 지원해 주는 관행적 문화는 사라졌다.

법률 시행 이전에는 체육대회가 열리면 학부모회에서 학생과 교직원에게 음료수를 제공하고, 수학여행에도 간식 등을 지원했지만 이 같은 관행은 사라진지 오래다.

실제 청주의 한 고등학교는 최근 1박 2일 일정으로 학급반장과 교직원 등 70여명이 간부수련회를 떠났다. 학부모회에서 ‘간식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학교측은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한 교직원은 “올해도 여전히 학부모측과 교직원 사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깨끗한 문화가 조성돼 한편으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률 시행으로 ‘사제간 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지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이전 학부모들이 학급 학생들을 위해 간식을 지원해 같이 먹으면서 학생들과 유대관계가 형성됐지만 이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차를 같이 마시며 대화를 하는 문화가 사라지면서 아이들과의 추억도 그만큼 없어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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