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지금 우리 사회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손바닥 안의 정보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걸쳐 인적소통은 점점 부재되는 현실이다. 이혼율 증가에 따른 가정불화, 학교폭력, 노사분쟁과 구조조정에 따른 경제침체, 현대판 권력 암투로 인한 정치 불안, 국제테러 급증 등 곳곳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을 경청하면 귀동냥으로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경청(傾聽)의 한자 풀이를 하면 다음과 같다. 기울인다는 ‘傾’자는 (사람인)+頃(잠깐경)의 형성문자(形聲文字)로서 사람(?)이 잠시 잠깐(頃) 사이에 바르지 못한(傾) 마음이나 행동으로 기울어져서(傾) 다투기도(傾)하고, 다치는(傾) 경향을 보인다, 즉 ‘傾’자는 기울다, 기울어지다, 다투다, 다치다, 올바르지 않다 등의 뜻을 지닌다.

듣는다는 ‘聽’자는 변(邊:왼쪽)에 귀이(耳)자 밑에 임금왕(王)자로 되어 있고, 방(傍:오늘쪽)에는 열십(十)자 밑에 눈목(目)자를 옆으로 뉘운 글자와 한일(一)자와 마음심(心)자로 구성된 형성문자이다. ‘聽’은 말하기 전에 우선 들어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으로 왕 같은 귀라는 것은 매우 커다란 귀로써 즉, 들을 때 집중해서 들어야 함을 뜻한다. 듣는다는 것은 10개의 눈을 갖는 행위로서, 즉 상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상대방의 표정, 눈빛, 태도 등 상대의 마음을 읽는 비결을 10개의 눈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청’이란 어진 군주의 마음으로 들으라는 뜻에 내포되어 있는 한결 같은 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마음으로 들으면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요사이 정치권의 혼란함도 상대방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불통된 체계에서 터전 버린 암적(癌的) 병폐가 이미 수술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다.      

소통은 어떤 조직이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리더가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조직원과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면 조직원들은 고통을 호소하게 되며, 그 조직의 뿌리부터 흔들릴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참된 리더는 한 집단을 끌고 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그 집단에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항상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기에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조직의 어느 위치에 있던 간에 상관없이 모두가 귀를 열어야 한다. 조직의 상부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간신배에게 속아 나라를 그르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음에도 아직도 한 순간의 영욕을 위해 먼 앞날을 바라 볼 줄 모르는 소인배들이 사회 전체를 흐리게 하고 있다. 지도력은 달변보다는 경청에서 나온다.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각자 마음에 있는 진실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름다운 경청의 마음이 있다면 그 삶은 풍요로울 것이다.      

소통 궁극적 목적은 상대와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텅 빈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상대방과 진실을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하다. 경청이란 상대방에게 잠재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얻는 지혜이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를 존중해주며 이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소통이 잘 되면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인류문명이 발전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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