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노화욱 당시 하이닉스 반도체 상무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그가 하이닉스 지원본부장을 맡아 매주 청주와 경북 구미, 경기도 이천, 서울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2003년 취재과정에서 현대그룹 사원에서부터 반도체 회사의 임원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여정을 들었다.

경남 마산고를 졸업하고 현대그룹 입사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평범한 사원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선배와 노사업무를 맡았는데 그 사람은 법률지식이 상당히 뛰어났다고 했다. 당시 기업들은 노사안정을 위해 법률 전공자를 크게 우대했다.

어쨌거나 노화욱은 이 선배를 꺾어보겠다는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노동법 등에 관한 전문지식을 쌓으면서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는 승승장구했고 이 것이 계기가 돼 충북도 정무부지사까지 올랐다. 물론 엄청난 노력이 뒤따랐지만 똑똑한 선배를 만난 것이 그가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하는데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가 정무부지사에 내정된 직후 “충북에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등의 논란은 있었지만 정우택 지사는 그를 임명했다. 노 정무부지사는 가장 먼저 민주노총 관계자를 만나 하이닉스 하청지회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노 정무부지사가 잘 알 듯이 쉽게 풀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난감해진 것은 하이닉스. 그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사태는 그의 의지대로 해결될 가능성이 현재로는 적어 보인다. 이 점이 그의 딜레마다. 

안타깝게도 하이닉스와 하청지회 노조원들은 2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진 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하이닉스는 민주노총에 맞서 그동안 외곽경비에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붰다. 웬만한 기업 같았으면 문 닫았을 것이다. 그 중심에 태생적으로 노 정무부지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취임 두 달을 넘겼지만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 취임전 의욕적으로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만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데 한계가 있다면 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서로를 위해 유익하다.

노 정무부지사가 취임 후 가장 먼저 대표적인 기업인 10명의 사진을 자신의 방에 걸었다. 물론 이 것이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더 화급한 일은 ‘경제특별도’를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다. 취임 후 아직까지 이렇다할 그의 소신이나 경제특별도 운영철학이 들리지 않고 있다. 성급할지는 모르지만 그 뼈대를 세웠다면 도민들에게 내놓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촌음을 아껴 써야 한다. 경제특별도를 이끌고 있는 정무부지사가 행사장에서 테이프 커팅이나 할 정도로 한가한지 묻고 싶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지역을 살찌우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또 노사전문가 못지 않게 기업유치의 최고 전문가가 돼야 한다. 기업 및 외화유치를 위해서는 삼고초려는 물론 10번, 100번이라도 기업인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개발일화는 감동적이다. 그는 반대하는 시민들을 만나 수천 번이나 설득했다. 이는 공직사회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하이닉스 농성장에, 기업유치 등 기업특별도에 적용할 연구대상이다.

‘기업특별도 드라마’는 시작됐다. 그러나 그 드라마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는 전적으로 연출자 노 정무부지사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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