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청주사진아카이브도서관장

 

[ 충청매일 ] 대학에서 사진을 배울 때 얘기다. 선후배들이 전시를 열 때면 의무감으로 오프닝에 참석하곤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같은 학교 소속이라는 동질감에 쉽사리 말문이 터지곤 했는데, 그 덕분에 보통의 사진 전시보다 더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도 모를 정도로 어색한 언어를 쓰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사진들이 너무 많았다. 학우들은 나에게 사진 읽기의 소양 부족을 얘기했다. 특히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은 사진 한 장을 이해하는데 외국의 저명한 이론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때 제일 많이 들었던 이론가는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등이 있다.

 최근 사진 수업에서 자주 듣는 얘기는 현대 사진에 관한 질문들이다. 중요한 건 말의 의도인데, 현대 사진을 꼭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질문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현대 사진이란 말에 앞서 현대 미술이라는 말이 있고, 비슷한 말로 동시대 미술이란 말을 쓰곤한다. 현대는 지금 시대를 절대적으로, 동시대는 상대적으로 지칭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두 단어의 의미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대 사진을 논할 때 항상 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많은 참고를 해야 하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자주 보게 된다. 더불어 사진의 고유 속성인 평면 예술에서 벗어나 입체적 시도를 하는 등 기존과 형태적으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진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미술의 한 분야이다. 다만 국내 미술관 분위기를 살펴보면 사진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진 미술관이 별도로 생기는 것만 봐도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미술 전공자들이 사진 이론 또는 사진술을 배울 기회가 적은 게 큰 원인으로 추측해 본다. 사진가와의 관계를 통해 서로 협치하기 위한 과정들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레 서로 스며들 수 있는 계기가 생기겠지만 이 또한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진은 특정인의 노력보다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최초 사진 인프라를 확장한 것은 사진관이었고, 이후 각종 협회, 동아리 등 여러 단체들이 사진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중 큰 범주를 차지하는 그룹이 아마추어 사진가인데 가장 왕성한 발표를 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한국은 현재 세계 10대 선진국에 들어갈 만큼 경제 강대국이 되어버렸다. 다만 문화 예술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은데 우선 인식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현대 미술 활동이고, 이런 것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동시대 예술이 된다는 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현대 사진은 그 의미를 찾기보단 단어 자체를 소비하는 경향으로 일종의 패권 다툼의 수단처럼 쓰이고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 기둥이 되어 세상에 올바르게 제안하는 태도가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새로운 변수가 되길 바라며 서로의 노력이 모여졌을 때 건강한 사진 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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