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 충청매일] 봄 방이 추우면 맏사위 달아난다, 봄바람에 죽은 노인,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 등 봄추위에 대한 무수한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꽃샘추위는 봄을   많이 시샘하는가 보다. 짙은 황사 바람과 쌀쌀한 기온을 봄비가 막아준다. 

 바람도 소리도 없는 비가 종일 촉촉이 내렸다. 이 비를 먹은 대지는 힘을 내어 앞다투어 싹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봄비로 인해 적당히 젖은 땅은 씨앗 뿌리기에 좋고 모종 옮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하여도 시시때때로 따뜻한 봄기운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기별 없이 쨍하고 나타난다. 봄은 이렇게 사람들 몸속으로도 들어와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대청마루 찬장에는 봉지마다 각종 씨앗이 각각의 향을 내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봄이 오면 곱곱한 땅에 씨앗 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빈터마다 채소 씨앗을 뿌리는 엄마를 따라다녔다. 열무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텃밭에 열무 씨앗을 뿌리며. "이건 열무 씨앗이란다" 통통하고 진득한 손에 열무 씨앗을 쥐여 주며 밭고랑에 조금씩 한 줄로 뿌리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심은 열무가 정말 싹이 나올까 궁금했다. 이삼일 지나자, 하트 모양 떡잎이 올라왔다. 그리고 금세 떡잎을 제치고 여린 본잎이 자랐다. 열무는 정말 금방 컸다. 경쟁하며 잎을 내고 키를 키우는 초록 초록한 열무를 보면서 씨앗의 신비로움에 빠졌다.  아무리 너른 옥토가 있어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죽은 땅이 된다. 겨우내 헐벗은 땅은 씨앗을 받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씨앗이 발아하여 생명을 살리고 터전을 풍성하게 한다.

 사람도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이 얼굴에 나타난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심성뿐만 아니라 성정도 그대로 드러난다.  마음속에 빛의 씨앗을 뿌리면 얼굴이 환해지고, 그 따뜻함이 자손에게까지 번진다. 반면 어둠의 씨앗을 뿌리면 악의 씨는 강한 돌연변이를 발아하여 자신을 망하게 하고 후세를 병들게 한다.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음은 불변의 진리이다. 

 글을 쓰는 이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에게 어떤 씨앗이 들어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탄생한다. 상상과 감각이 자양분이 되어 명작이 되느냐 졸작이 되느냐 둘로 갈라진다. 

 상상과 감각은 글의 씨가 된다. 좋은 붓을 가지고 있어도 이 씨가 없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현실과 상상력을 연결하고 머릿속에서 가공하여야 한다. 거기에다 고민과 고독이 합해지고 갈등과 변화도 가미되어야 한다. 내 글이 비록 채찍과 비난으로 돌려받아도 씨앗이 풍부하면 작가라는 심지는 더 굳어진다.

 씨앗이 어둠에서 싹을 틔우듯 고뇌의 등에 업힌 씨앗은 작가의 마음을 먹고 자라면서 독자에게 풍족한 마음을 안겨준다.

  3월은 약동의 see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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