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청주사진아카이브도서관장

 

[ 충청매일 ] 학창 시절, 가장 열정적이면서도 괴로웠던 시기는 단연코 게임에 매몰되었을 때다. 피시방이 유행하고, RPG 게임 열풍이 불면서 누구나 영웅 한 명 정도는 키워봤을 만한 때다.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게임은 디아블로2였는데, 부모님의 눈을 피해 식음을 전폐하며 즐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피시방에서 동네 형들에게 사정하며 얻었던 아이템이 지금도 그립고, 아무리 노력해도 정복할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게임이 몇 해 전 리마스터 되어 재발매 되었다. 놀라운 건 어린 시절 함께했던 유저 상당수가 돌아왔다. 게임 내 ‘@@아빠’와 같은 아이디가 흔한데 20년 세월이 흘러 현재 사회의 기둥이자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초보 영웅 ‘뉴비’

 이 게임은 성역에서 영웅을 육성하는 과정으로 맨몸으로 시작해 도전 과제를 처리하며 성장하도록 되어있다. 몬스터를 죽이면 아이템 보상을 받고, 어려운 과정들은 유저간 협업으로 해결해 나간다. 특이점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 땀 한 땀 성장해 가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는 점인데, 게임의 이해가 없다면 쉽사리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버스’와 ‘쩔’

 버스는 내가 가지 못하는 곳으로 더 높은 레벨의 유져가 데려다주는 것이고, 쩔은 내가 사냥하지 못하는 몬스터를 누군가 대신 처치해 주는 것이다. 이런 성장법이 보편적인 방법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도움받으며 공존한다. 여기에 게임에서 주어지는 보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현질’, 즉 돈을 내고 아이템을 구입하는 일도 허다하다. 사실 일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짧은 여가를 이용해 게임을 게임답게 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거의 필수적이다. 

 △‘결핍’과 ‘분노’

 결핍은 성장 폭이 제일 큰 단계로 가장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시기이다. 잘 다듬어진 유져들의 정보, 아이템 공략 등을 보고 난 뒤 따라 하는 노력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떤 세팅은 ‘국민’ 자가 붙을 정도로 누구든 해보는 게임 문법도 있다. 가장 폭발적인 성장은 바로 분노인데,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 방해하거나 어떤 환경에 불편을 느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게 된다. 최고 수준의 육성 시기로 매일 밤을 새우는 등 비상식적인 활동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튜닝의 끝 ‘순정’

 이 모든 과정을 질릴 정도로 겪은 골수 유져는 그제야 맨땅이라고 말하는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는 순수한 솔로 플레이를 시작한다. 이때는 외부 아이템도 지원받지 않는다. 게임사에서는 이것을 신규 유저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졸업 과정으로 대체되고 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뉴비는 항상 존재한다. 다만 처음부터 길을 잃고 방황하다 사라지는 일이 잦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함께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결핍과 분노 단계까지 와줘야 게임 같은 즐길 거리를 기획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이른바 ‘버스’와 ‘쩔’이 어느정도 필요한데, 이런 양성 활동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를 선사하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이 고수에게는 놀이터, 하수에게는 생지옥이란 영화 속 대사처럼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게 된다면 우린 좀 더 풍요로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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