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 충청매일 ]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 여직원은 소프라노로 인사를 했다. 47세, 전직은 피부과 상담원,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화려한 네일아트, 반짝이는 스웨터에 하얀 망사 치마, 엄동설한에 오피스 룩 치고는 한 야하고 난해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니 "저는 49kg 될 때까지 다이어트 할거예요"하며 거절했다. 당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더욱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있는데 재혼한 남편 사이에 얻은 딸이란다. 초혼으로 얻은 아들은 전 남편과 조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다음 날, 자신은 ‘고아’였단다. 자신이 핏덩이일 때 강보에 싸여 교회 입구에 놓였는데 교회 사모님이 고아원에 맡겼다고 했다. 그 후 몇 달 뒤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젊은 부부에게 입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 자기 형제가 살고 있을 것을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튿날이 되자 컴퓨터 1대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집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 1대를 가지고 와서는 대단한 업무를 보는 양 2대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며 복부 온열기까지 착용하고 꾸부정한 자세로 자판을 치며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해댔다. 

 본격적인 업무를 전달하면서 업무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았으나 예상대로였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훈련 아닌 훈련을 해 볼 작정이었다. 

 나는 ‘B 사감과 러브레터’ 사감으로 마주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엄격하고 매서운 모습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 깐깐하게 대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신입은 풀이 죽기 시작했다. 나의 송곳 같은 말에도 늘 "네 네" 하며 수긍했다. 점점 혼자서 중얼거리는 습관도 바꾸고, 목소리도 낮추고, 짝퉁으로 감싸던 옷차림도 얌전해 졌다. 업무도 어렵지만 조금씩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 내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가 된 기분이었다. 신입에게 나 자신만의 절대적 기준을 정해 놓고, 모든 것을 내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처음부터 고아였다는 말을 차라리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신입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의 고정관념이 이미 신입을 폄하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신입에게서 내 그림자를 본 건 아닌지, 나 역시 나약한 존재이거늘 그 나약함을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마 아니무스’는 나에게 억압되어 있는 여성성이 이성(異姓)에게 보이면 이유 없이 그가 미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신입이 그렇게라도 살아남고자 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들여앉혀 놓고 살고 있지는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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