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 충청매일 ]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은 나라의 잘못된 정책 등에 대해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오늘날 대학생들의 데모와 같은 권당(捲堂)을 행하였다. 사극에서는 대궐 앞에서 유생들이 밤샘 시위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지만 실제로는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성균관을 비워두고 나가 버리는 정도였으며, 어전 앞에서 부복 시위는 극히 드물었다. 권당이 발생하면 조정에서는 개유사(開諭使:일종의 협상관)를 보내 복귀를 권하는 한편 유생들에게 그 연유를 물은 뒤 이러한 사정을 초기(草記)로 써서 왕에게 올려 판단하게 하였다. 유학을 중시했던 나라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여 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지난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했고, 이 때  박사과정 졸업생 신민기씨가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을 복원하라"는 취지로 소리치다 내금위 군사(內禁衛 軍士: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다. 물론 국가 원수 경호 차원에서 제지했다고는 하지만, 집단 시위도 아닌 1인 발언 정도에 대해 다소 지나치게 대응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와 유사한 경호 방식은 지난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국회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항의했다가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히고 사지를 들려 나간 적이 있다. 또한 2월 1일에도 의료개혁 민생토론회 행사장 앞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 의사회장이 행사장 입장을 요구하다 경호처 직원에게 입을 틀어막히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비난이 쏟아져도 대통령 경호 원칙만 내세운다.

 이는 봉건시대 폭군이나 무인정권 때  어전회의를 하면서 임금의 심기를 거슬렸다고 하여 무사들에게 당장 끌려 나가는 현대판 사극을 재연한 듯하다. 이같은 파동에 카이스트 동문들은 2월 20일 대통령 경호처장과 직원 등을 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폭행 감금죄 등으로 경찰에 고발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당사자인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국민의 입을 막는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물론 한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 경호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무시하는 경호는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시나 비상 체제도 아닌 상황에서 무조건 언로는 막겠다는 것은 심사숙고해 봐야 할 대목이다. 

  왕조 시대에는 국왕이 지방으로 행차를 갈 때 길가에서 백성들의 격쟁(擊錚)을 들어주었다. 특히 세종은 행차시에 백성들이 격쟁을 하는 백성들이 보이지 않은 것을 하문하였고 경호상 금지하였다는 관원들을 크게 나무라기도 하였다. 오늘날 대통령 경호를 왕권시대로 착각한다면 이는 심각하다. 더군다나 철저한 경호 검색을 끝낸 식장에서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학생이 내동댕이 처지는 장면이 생중계되는 사태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돌연 질문에 대한 임기응변적 처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제부터 대통령 경호실은 민주주의 사회에 적합한 대응 매뉴얼을 적용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에서 대통령 경호의 철저함은 당연하지만, 선조들의 권당이나 격쟁과 같은 국민 언로를 최대한 포용했던 배려와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