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삼 조각가, 청주 애견카페 ‘모리네집’ 대표

유명 조각가→반려견 분야 사업가로 ‘변신’ 시도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고민
고생 끝 애견카페 문 열어…'두 마리 토끼 잡는다'

황학삼 조각가(애견카페 ‘모리네집’ 대표). 사진 오진영 기자.

[충청매일 조준영 기자] 충북지역 유명 조각가가 반려견 분야 사업가로 변신했다.

물론 완전한 전직(轉職)은 아니다. 예술혼을 활활 불태울 때 쓸 원동력을 비축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황학삼(41) 조각가. 그는 3년 전인 2021년부터 청주에서 애견 카페 모리네집(서원구 남이면 석판리 241-3)을 운영하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 황 작가는 말한다. 일생 동안 작품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작가들이 오랜 시간 작품 활동만 하기엔 경제적으로 쉽지 않아요. 수년에 걸쳐 전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압박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 상당수가 또 다른 직업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변신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결심을 세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이 아니었다. 우선 당장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지상 최대 고민으로 떠올랐다.

황 작가는 이때 배우자로부터 애견 카페 사업을 제안받았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오래전부터 애견 미용 전문가로 활동해 온 터였다.

"적잖은 시간 작품 활동에 매진하다 보니 경제 활동을 많이 미뤄둔 상태였어요. 그래서 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때, 집사람이 ‘애견 카페를 해보는 게 괜찮을 거 같다’라고 의견을 냈어요.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은 게 오늘날 또 다른 저를 만든 계기가 됐죠."
 

황학삼 조각가(애견카페 ‘모리네집’ 대표). 사진 오진영 기자.

순수 예술가는 곧장 사업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에 애견카페라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여서 사실상 ‘0’에서 기틀을 다져야 했다.

먼저 애견카페라고 불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분위기를 살폈다. 운영 방식 역시 중요한 배울 거리였다.

그렇게 보낸 시간만 어언 2년, 어느덧 황 작가 머릿속에는 조각 작품 구상도처럼 사업 밑그림이 그려졌다.

‘자연과 동화’, ‘천편일률적인 형태 지양’, ‘사람과 반려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애견카페라는 문화가 사실 보편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애견카페라고 해봐야 창고 형태로 지어 단순히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머무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시장조사를 하면서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사람과 반려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곳. 바로 이게 목표였죠."
 

충북 청주시 애견카페 ‘모리네집’ 전경(서원구 남이면 석판리 241-3). 사진 오진영 기자.

황 작가는 나름대로 그려둔 밑그림을 하나둘 현실로 옮겼다.

남이면 석판리 한 마을 동산 어귀에 자리 잡은 계단식 논 약 3천305㎡(1천평)를 샀다. 오랜 세월 논으로 쓰여 무른 땅이었으나 ‘전원(田園) 속 힐링 공간’을 만들기엔 제격인 곳이었다.

무른 땅을 메우고 기초를 다지는 데만 건설 트럭 250대 분량에 달하는 흙과 골재가 들어가는 문제는 나중 일이었다.

그는 지난한 과정을 묵묵히 견뎌낸 끝에 단단한 터를 얻을 수 있었다. 조각 작업으로 따지면 이제 막 내부 골조를 만든 단계였다.
 

충북 청주시 애견카페 ‘모리네집’ 실내 놀이터 내부 전경. 사진 오진영 기자.

이제 남은 건 골조에 점토를 덧바르고 깎아내는 것처럼 구상한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지의 영역이다 보니 챙겨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좌충우돌 끝에 2층짜리 건물과 1층짜리 실내 놀이터, 천연 잔디 야외놀이터를 세울 수 있었다.

세 공간은 사람과 반려견 모두가 ‘편안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휴게 공간, 반려견 포토존, 미용실, 간이 목욕장, 물놀이장 등등. 심지어 바닥 재질이나 채광도 사용자 편의를 중심으로 꾸몄다.

"준비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어요. 제가 모르던 어떤 분야를 개척하는 데 있어 선결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했죠. 그나마 여러 친구와 선후배가 알음알음 도움을 줘 헤쳐 나갈 수 있었어요."
 

황학삼 조각가가 운영하는 충북 청주시 애견카페 ‘모리네집’에서 한 반려견과 사람이 어울려 놀고 있다. 사진 오진영 기자.

황 작가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예술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는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조각은 평생 놓을 수 없는 본업이다.

충북대학교 미술과(조소 전공)와 동 대학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뒤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20년 가까이 수많은 전시회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고,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조각 작품은 유명 기관·단체가 소장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문의면 도원리에 있는 작업실로 가 조각칼을 집어 드는 이유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황 작가는 매주 한두 차례 경북대학교에서 인체 모델링 강의를 한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온다.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지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라고 말하는 그다.

근래 들어서는 서원구 장성동에 전시 공간인 갤러리를 만들고 있다. 예술 분야 작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대학 선배와 의기투합했다.

황 작가는 총괄 기획 역을 맡았다. 갤러리는 이달 말 일본·한국작가가 참여하는 개관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고생 끝에 시작한 사업도 내실을 더 다지기로 마음먹었다. 카페 사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문 훈련사와 협업해 반려견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지금이 예술가로서나 사업가로서나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황학삼 조각가(애견카페 ‘모리네집’ 대표). 사진 오진영 기자.

"작가로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런 와중에 시작한 사업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죠. 비록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결국 작품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또 다른 변화의 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시기인 만큼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낼 생각이에요."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조각가 황학삼이 사업가로서도 일가(一家)를 이루길 응원한다.
 

황학삼 조각가(애견카페 ‘모리네집’ 대표). 사진 오진영 기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