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 충청매일 ] 반면에, 동양의학에서는 벌써 2천년 전에 이런 것의 문제점을 알고 보는 방법을 다르게 확립했습니다. 즉 증상학이죠. 어디가 아프면 그곳을 해부해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과 관계를 맺은 상대 쪽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실체론이 아니라 관계론입니다. 시소의 낮은 쪽만 바라보는 것이 서양의학이라면 낮아진 시소의 반대쪽에는 높이 솟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동양의학의 발상입니다. 시소의 수평을 맞추는 방법은 낮은 곳을 들어올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높은 것을 내리누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동양의학의 관계론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론의 바탕 위에서 유추된 신체 내부의 지도가 바로 경락입니다. 그러므로 경락은 실체론의 관점으로 아무리 찾아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관계론으로 얽어진 틀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둥글므로 동서남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동서남북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경락은 동서남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해가 지는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을 때 몸에 병이 난다고 보는 것이고, 그런 균형을 조절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이 바로 경락이라는 것입니다.

 활쏘기는 줌손을 밀고 깍짓손을 당기는 방법으로 운용됩니다. 이 방법은 앞뒷손의 어느 한쪽에서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양쪽의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실체론에 입각한 과학의 방법으로 전통 사법의 비밀을 파헤치려 할 때 반드시 많은 부분을 무시하거나 생략하고 어떤 결론을 유도하게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과학론이 지닌 한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한국의 전통 사법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 사법이 지닌 비밀을 정확히 밝히려면 과학의 방법보다는 경락학 같은 관계론의 방법이 더 중요하고,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때,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전통 사법에 가장 적합한 것인가 하는 것을 확정한 뒤에, 그 방법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방법을 그것을 보조하는 것으로 채택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 인류가 개발한 모든 방법 중에서 경락이론이 전통 사법의 비의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 되어야 하며, 그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과학의 방법이 동원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새로운 방법을 창안할 수 없는 현 상태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인류가 가본 적이 없는 영역은 모든 것이 두려움입니다. 알지 못해서 두렵고, 잘못 알까봐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인류가 가본 적이 없는 그 영역은, 날마다 가던 그 버릇으로 인하여 파묻히거나 짓밟히기 일쑤입니다. 한국의 전통 활쏘기에 내재된 사법이 그런 영역입니다.

  거위 한 마리가 있어 날마다 황금알을 낳습니다. 욕심 많은 어리석은 주인은 뱃속에 무수히 많은 황금알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배를 가릅니다. 어설픈 이론들 앞에 처음으로 몸통을 드러낸 한국의 전통 사법이 마주친 현실입니다. 신중한 접근법이 요구됩니다. 망나니들에게 맡기면 망가지는 일밖에 기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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