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청주사진아카이브도서관장

 

[ 충청매일 ] 사진 책은 서문을 제외하면 책 전반에 걸쳐 글자가 없다. 

 도서관에 찾아준 사람 중 가장 많이 묻는 말 중 하나는 전체 장서를 다 읽어봤는지이다.

 천 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물어볼 만도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진 책은 이미지 중심의 내용으로 읽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훑어보면 몇 분 만에도 한 권을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서서히 모은 장서인 점을 감안하면 구입할 때마다 한 권씩 보기만 해도 전체 도서를 읽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책이라는 게 단순히 정보전달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용도가 있기 마련인데, 단순히 읽는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이 아직도 일반적인 반응이다. 

 지속적인 사진 활동을 위해 사진가를 넘어 문화기획자, 큐레이터 등 삶의 역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기록 활동이 시작되며 프로듀서 활동도 병행되고 있는데 이런 사유로 글을 쓰는 일이 자주 생기고 있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써야 하는 게 기획자의 글, 일명 서문이다. 

 2023년부터 기록 전문가 3명이 모여 매달 1회씩 콜로키움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로 시작되는 모임으로 밥을 먹으며 관계를 만들고, 각자 영역에서 생긴 동향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에서 2024년에는 기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기로 했고, 이를 위해 그간 만든 기록의 흔적들을 모아 전시를 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3명 모두 프로젝트 프로듀서 역할을 맡다 보니 직접 생산한 기록이 서문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년간 써 내려온 서문들을 모아 시각화해 보기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나 스스로 서문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려 한다. 

 기획자로 가장 신경쓰는 일은 균형이다. 일종의 속도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는지에 가장 큰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런 낯선 일에 참여자의 동기를 유발시키고, 프로젝트의 배경, 과정, 목적을 오직 글로 알리는 셈이다. 

 가끔 첨부 사진 한 장이면 될 일을 글로만 작성하려니 설명이 어렵기도 했다. 맞춤법을 살피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어색하고, 누군가 내가 적은 글에 부정적 피드백을 들을까 한번 적으면 덮어두고 안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오로지 자력으로 만들어진 순수 콘텐츠, 프로젝트에서 유일한 편집자의 의견 첫머리에 있는 가장 빈도수 높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게 서문인 셈이다.  다음 주에 열리는 기록의 서문 전시장에서 이런 편집자의 고충이 담긴 서문들을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역할이 추가되고,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애정하는 자세로 서문을 써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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