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 충청매일] 달콤한 딸기를 먹고 싶다는 말에 아들은 서슴지 않고 딸기밭으로 핸들을 돌렸다.

 하우스 안에 새빨간 딸기가 눈부시다. 농장 주인이 씻어 온 물기 머금은 딸기가 선홍색이다 못해 농염하다. 한입 베어 먹으니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차오르며 쌓였던 피로가 스르륵 사라졌다.

 어릴 적, 넓은 뒤란에 흰 꽃 몇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딸기꽃이었다. 푸른 잎새 사이로 익지 않은 몇 개의 딸기가 보였다. 그것이 익으면 따먹을 생각에 연두색 딸기가 빨간빛으로 딸기 익기를 기다리는 초여름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연두색 딸기가 푸른 잎사귀에 숨어 있는 모습은 초경을 치른 수줍은 소녀를 점점 닮아갔다. 드디어 봉긋이 내민 새빨간 딸기는 손을 대면 터질 것 같은 아찔한 감촉과 소유하고 싶은 농밀함이 그대로 입으로 들어갔다. 첫 딸기 맛의 긴 기다림은 결코 실망을 주지 않았다. 그때의 딸기 맛을, 나이 먹어버린 지금의 내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얀 딸기꽃을 보면 행복한 임부가 된 것만 같다. 함부로 만질 수 없는 딸기는 임부를 다루듯 고이고이 다뤄야 한다. 태아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10개월간 아파도 약을 먹지 못하고 모든 행동과 식습관을 조심해야 하듯 딸기도 생육환경을 잘 맞춰주어야 한다. 하얀 꽃이 지면 연두색 몽우리가 점점 성장하여 좁쌀만 한 까만 씨앗을 품고 언니의 볼처럼 발갛게 성장하면서 온몸에 부드러운 과육과 풍부한 과즙으로 채워진다. 살포시 익어가는 딸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색깔에 반하고 온몸으로 새봄을 느낀다. 한 입 베어 먹는 그 순간, 첫사랑과 같은 짜릿함을 준다.

 첫 임신을 하자 입덧에 지친 새댁은 유난히 딸기가 먹고 싶었다. 그 시절에는 노지 딸기만 재배하던 때였기에 한겨울에 딸기를 먹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딸기향료가 들어간 음료나 딸기잼을 물에 타 마셨지만, 입덧을 잡지는 못했다. 지독한 입덧이 지나가고 5월이 오면 친정집 뒤란에 있는 딸기를 찾아 드나들었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임부의 사정을 아는지 그해 딸기는 유난히 많이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따주신 딸기를 냉동고에 얼려 우유와 섞어 딸기 주스를 마시며 기력을 되찾았다. 

 딸기의 변신은 무한하다. 요즘 핫한 거리마다 탕후루 가게가 들어섰다. 빨간 딸기 꼬치에 설탕물을 입힌 탕후루가 인기가 많다. 한입 먹어보니 달콤한 딸기에 더 달콤함을 입힌 맛은 그야말로 고급지고 스페셜한 맛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처음은 좋았지만 두 번째는 지나친 단맛에 오히려 건강이 염려되었다. 또한, 탐스러운 붉은색 때문인지 여러 종류의 디저트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여자라면 ‘딸기 같은 여자’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순수함을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때 호날두가 ‘자신은 딸기 같은 남자’라며 과도한 자기애를 표해 비웃음을 샀다. 그는 세계 최고를 찍고 이런 말 한마디로 한순간에 몰락을 맛보기도 한다. 무엇이든 순수함을 넘어 지나침은 처음은 그럴듯해 보여도 곧 외면받게 된다. 딸기는 딸기나무에 달려 있을 때가 가장 고급지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인공으로 가미가 되면 그 귀중함이 덜하다. 고향도 그렇고 사람 마음도 그렇다.  빨갛다 못해 가슴을 거먕빛으로 물들이는 딸기를 보면 아슴아슴 옛 추억이 되살아나고, 나는 나의 존재를 더함으로써 그것들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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