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의 딸이 물었다.

‘아버지!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 그 때 임어당은 ‘다르게 보아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한 작가의 이 짧고 명료한 대답, 명쾌하다.

나는 ‘임어당’의 이 말을 자주 새긴다. 가끔 내게도 사람들이 묻는다.
‘FM음악방송 오랫동안 안 잘리고 진행하는 비결은 무엇?’

그때 나도 임어당과 비슷한 말을 한다. ‘남들과 좀 다르게, 아나운서같은 디제이로 디제이같은 아나운서로 하다보니….’ 명쾌한 답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불가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확대 해석하면 임어당의 ‘다르게 보아야 한다.’하고도 일맥 상통한다. ‘확실한 주체를 갖고 내 굳은 의지대로 세상을 산다?’는 말로 해석 할 수도 있겠다. 선인들은 한여름 피서법으로 망서(忘暑)를 강조한다.

더위를 피해 떠나는 ‘피서’가 아닌, 굳은 의지와 어떤 생산적인 행위로 더위를 잊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은 의미의 망서. 어떤 이는 재미있는 책을 보며 더위를 잊는다하고 누구는 열심히 일을 한다하고 또 다른 이는 수도승처럼 욕망과 집착의 활전속을 벗어나 명상삼매에 빠진다고들 한다.

또 있다. 요즘 화재가 되고있는 벌써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영화 ‘괴물’을 보면 확실히 망서를 이룰 수도 있겠다. 나도 지난 주말 확실한 ‘망서’를 경험했다.

한낮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폭염 가운데서 나는 몇 겹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보은 세중초등학교에서 열린 특집공개방송 ‘산골마을 작은 음악회’ 진행을 보게 된 것이다.

코디는 국악무대 성격상 한복을 내게 권했는데 빌려온 개량 한복은 갑옷처럼 몇 겹의 천으로 모양만 예쁘게 지은 통풍은 안되는 땀복 같은데다 바지는 속이 훤히 비추어져 내 양복바지를 속에 껴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은 덕지덕지 분장을 하고, 비록 나무그늘이라고는 하나 야외 폭염속에서의 무대는 뜨겁고 뜨거웠다.

조용필의 노래처럼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의 가사가 자꾸 떠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위가 싹 가시었다. 아니 더위를 까마득히 잊고, 나는 듯 두시간을 보낸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다. 그 어떤 힘이 나를 그토록 폭염속의 더위마저 잊게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 준 감동의 힘이었다. 경북과 맞닿은 한 산골 작은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이, 전교생이라야 49명밖에 안 되는 그것도 경북지역 학생들이 반이나 되는 이 산골의 어린이들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산교육을 열어 가고있는 순후한 들꽃학교 선생님들이, 우리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나를 아니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조막만한 손으로 그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야생화가 있는 야외무대를 꾸미었고 굿거리장단의 국악동요를 힘차게 부르고 우리 춤을 추고 우리 창을 했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한 명망 있는 출연자들 또한 이 아름다운 초록무대를 모두 사랑했다. 금새 자연과 하나가된 퓨전 우리 음악을 기량껏 연주하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산 같은 강물같은 바람 같은 소리들로 우리는 산골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거기에 더위가 있었겠는가.

그 어느 틈으로 더위가 찾아올 수 있었겠는가. 망서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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