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충청매일 ] 해외출장은 늘 기대되고 즐겁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나라와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낯선 장소와 사람, 잘 통하지 않는 언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현지 상황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도 든다. 많은 경험이 있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리고 착륙할 때의 두려움이 여전히 필자를 사로잡았다. 

 지난달, 처갓집 조카들과 스키장을 갔다. 올해 3학년 남자 아이는 스키를 신고 걷는 것조차 두려워했고, 결국 10분 정도 걷다가 끝났다. 이와는 반대로 1학년 여자 아이는 꾸역꾸역 초급코스를 따라오더니 필자가 손쓸 사이도 없이 빠른 속도로 내려가 버렸다. 중간에 넘어져서 일으켜 세워주었더니 곧 다시 내려갔다. 필자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두 남매는 반대 성향이었다. 

 같은 부모에게서 자란 이 남매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낯선 환경과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두려움은 좋지 않은 것일까? 20년의 시간으로도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일까?  필자는 어려서, 그리고 결혼 후에도 혼자서 여행한 경험이 없었다. 어려서는 명절 때 아버지를 따라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러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경험했다. 결혼 후 신혼여행, 그리고 가족여행 등 모두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낯선 곳을 혼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이유로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오롯이 혼자 여행한 첫 경험은 2022년, 제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의 14일간의 자전거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50이 훌쩍 넘은 필자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두려움은 슬픔이나 기쁨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이제 1학년 여자 조카처럼 매사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칫 큰 위험에 처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맹수를 만났는데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인류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꼭 필요한 감정인데도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느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맞서기 보다는 피하는 선택을 한다. 직장에서 상사에 대한 두려움,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두려움,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나에 대한 생각에 대한 두려움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두려움을 물리치려고 나름대로의 애를 써 보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상사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더 큰 꾸중을 듣기도 한다. 

  때론 틀린 말을 했어도 그게 아니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언성이 두려워 말하지 않고 회피하기도 한다.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고백하지 못하고 사랑을 떠나보낸 후에 눈물로 후회하지 않았던가? 두려움은 떨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을 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한다. 가족이든 직장 상사든 낯선 외국인이든 두려움을 안고 말해보자. 두려움 넘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사실 두려움의 90%는 가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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