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회복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충청매일 뉴시스] 회장은 숨었고, 감독은 떠났고, 선수는 다퉜다. 한국 축구의 낯 뜨거운 현주소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만의 정상 탈환에 도전했지만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7위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유효슈팅 하나 없이 졸전을 펼치며 0-2로 완패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결과만 두고 보면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이 이끌었던 2019 아랍에미리트(UAE)의 8강 탈락보다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세다. 대회 내내 무색무취했던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과 부실한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3월 부임 후, 미국 자택에서 근무하는 등 불성실한 업무 태도로 구설에 올랐던 그의 비상식적인 행보가 준결승 탈락과 함께 폭발한 형국이다.

이후가 더 큰 문제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를 복기할 것’이라는 계획과 달리 귀국 이틀 만인 10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 무능에 무책임함을 더한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에 날을 세웠다. 이런 인물을 사령탑에 앉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피할 수 없었다.

협회는 지난 13일 김정배 상근 부회장을 비롯해 이석재 부회장, 정해성 대회위원장,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 장외룡 부회장, 최영일 부회장,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이정민 심판위원장, 황보관 기술본부장, 전한진 경영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안컵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정 회장은 불참했다. 팬심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협회와 정 회장,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무책임한 행보를 질타했다.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쏙 빠졌다.

이런 가운데 이석재 부회장은 정 회장에게 경질로 임원들의 의견이 가닥이 잡혔다는 뜻을 전했다.

협회는 15일 전력강화위원회를 열고 아시안컵을 종합 평가할 계획이다.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 자리에도 화상으로만 참석한다.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에서 14일 새벽 영국 외신을 통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요르단과 준결승을 앞두고 선수들간 내부 분열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영국 매체 ‘더 선’은 "손흥민(토트넘)이 한국의 아시안컵 탈락 전날 팀 동료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더 선에 따르면, 손흥민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을 하루 앞둔 저녁 식사에서 젊은 선수들과 마찰이 있었다.

선수단 중 일부 젊은 선수들이 탁구를 즐기기 위해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흥민은 결속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는 게 보도에서 설명하는 충돌 배경이다.

또 손흥민이 문제 삼은 선수 중에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포함됐다고 했다.

보도는 사실이었다. 협회는 외신의 보도 내용을 확인하는 취재진에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협회에 따르면, 카타르 현지 대표팀 숙소 식당 바로 옆에는 탁구장이 있었다.

요르단전 전날 저녁 식사 후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 일부가 탁구를 즐겼고, 식당에는 클린스만 감독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있었다.

이에 손흥민 등 베테랑 선수들이 탁구를 과하게 치는 젊은 선수들을 향해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 자제하라는 취지로 꾸중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이강인 등이 대들며 다툼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멱살잡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흥민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다쳤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이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선수단 장악, 내부 단속에도 실패한 장면이다. 협회 관계자는 "오랜 기간 같이 합숙을 하면서 선수들이 예민해진 측면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협회와 회장, 감독에게 향했던 여론의 화살이 급격히 선수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하극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이강인에게로.

일부는 협회가 불미스러운 내부 일을 빠르게 인정해 정 회장,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책임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수단 내부 내용을 외부에 누가 흘렸는지, 협회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해당 내용을 빠르게 인정했는지를 떠나 회장은 숨었고, 감독은 사라졌고, 선수들은 다툰 게 사실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정 회장 등 협회 집행부는 전력강화위원회의 아시안컵 평가 결과를 참고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다. 결별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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