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미원중 교감

 

[ 충청매일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은 실제로 어떤 일이 있기 때문에 말이 나옴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이치로 보면 지극히 옳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 말만큼 함정이 큰 것도 없는 것 같다.

 다음은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방총이란 사람이 위(魏)나라 혜왕(惠王)에게 물었다.

 "지금 한 사람이 와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누가 믿겠는가! 나는 믿지 않겠소."  

 "그럼 두 사람이 와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시 믿지 못하지!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은 들 것 같소." 

 "그럼 세 사람이 와서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건 믿지! 세 사람이나 와서 말하는데, 거짓일 리가 없지 않소?"  

 애당초 번화한 저잣거리에 산중의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동일하게 말하면 진짜로 호랑이가 나타난 것처럼 되어 버린다. 세 사람의 거짓말로 있지도 않은 호랑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허무맹랑한 말도 여러 사람이 동조하면 진실로 둔갑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12월 17일(현지 기준) 워싱턴포스트(WP)는 5월 이후 AI가 생성한 가짜뉴스 기사를 게재하는 웹사이트가 49개에서 600여 개로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만 개의 가짜뉴스가 생성되고 있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역사를 보면 ‘공자(孔子)’나 ‘묵자(墨子)’ 같은 성현들조차 가짜뉴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자신들을 구하지 못하였다.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소문을 접한다. 그런데 문제는 듣는이가 소문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퍼 나르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소문이 재미와 가십거리를 동반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카더라 통신’에 따른 유언비어나 찌라시 수준의 가짜뉴스는 진실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애꿎은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때로는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친구가 행패를 부린 취객으로 오인되는가 하면, 차 한잔 마셔보지도 않은 상대와 스캔들 꼬리표가 달리기도 한다. 여기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라는 말이 보태어지면 허상은 기정사실화되고, 근거 없는 ‘아무말 대잔치’ 속에서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당사자는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며칠 전, 충북도교육청은 2024년 3월 1일자 교원인사를 단행했다. 당일 학교의 풍경은 이러했을 것이다. 발표가 예정된 시간, 우리 학교에 누가 올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인사발령알림 게시판’을 광클릭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한 순간, 어쩌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분명한 것은 학교마다 ‘소문’이 ‘사람’보다 먼저 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 소문에 현혹되어 오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기보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를 떠올리며, 왜곡된 평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지혜와 균형감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땐 굴뚝에도 얼마든지 연기가 날 수 있는 법이다. 적어도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에서만큼은 타인의 입을 빌어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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