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충청매일 ] A는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 40대 후반으로 호감형 외모와 쾌활한 성격으로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한데, 그녀는 스스로 초라하다고 말한다.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지’라고 여긴다. 가정경제가 어려웠던 것 말고는 특별한 어려움도 없었다. 두 명의 오빠 아래의 막내딸로 자랐기에 사랑도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많은 사람과 관계해야 하는 목사라는 특성상 살갑지는 않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강했지만, 그 시대 특성상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A는 자신을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알고 싶다고 했다.

 B는 50대 중반으로 학력과 직장을 기준으로 할 때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데 B도 자신에 대한 가치인식수준과 자신감이 낮다. 자신이 가진 것이 적다고 생각한다. B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계모의 술과 언어폭력 아래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 자신의 진로는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결혼도 부모와 상의하지 못하고 본인이 결정했다. 자신은 늘 불행했다고 생각했다. 성장환경은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B는 원인이 분명한데 비해 A는 원인을 찾기 힘들다.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A는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내적 갈등이 크다. 그래서 마음을 치유하기가 훨씬 어렵고 오래 걸린다. 우리 주변에는 B보다 A와 같은 사례가 훨씬 많다. 

 B들은 관계 갈등의 근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향이 많지만(숨기려고 하지만 자신은 안다), A들은 원인을 외부(배우자, 자녀, 직장 동료 등)에서 찾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가족 등 가까운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풀기가 어렵다. 필자가 만난 B도 그런 사례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가까운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만족보다 부족함이 많다. 마치 붉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붉은 안경을 끼고 거울을 보니 자신도 붉어 보이고 타인도 붉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B들의 원인은 사실 착각에서 비롯됐다. 자신은 어린 시절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았고,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랐다는 착각이다. 착각이란 그들의 부모가 B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는 나름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B도 그런 부모의 사정을 이해한다. 문제는 지금의 B가 아니라 어린 b가 경험한 부모는 달랐다는 것이다. 교회 성도들을 보살피느라 막내딸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아버지, 목사의 딸이라는 틀 때문에 늘 모범적으로 지내야 했던 압박감, 피아노를 잘 쳐서 칭찬받던 두 오빠와는 달리 칭찬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어린 b가 있었다. 

  어린 b는 지금의 어른 B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외롭고 답답하고 창피한 감정에 지배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어른 B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사랑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린 b는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랑받았다는 착각’이 B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B들에게는 어른 관점의 사랑이 아니라 자녀 시각에서의 사랑이 필요했다. 자녀들에게는 부모 입장에서 ‘멀리 내다보는 사랑’이 아니라 자녀 입장에서의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사랑’이 필요하다. 지금 충분히 사랑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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