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 충청매일 ] 얼마 전, 태영건설의 부도 위기로 나라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거대한 바위의 흔들림은 다행히 ‘워크아웃’으로 잠잠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부도 위기에 몰려 사람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같은 사업을 경영하는 우리 회사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 역시 도산의 그늘에 놓여있다. 몇 개월 전 대표님이 타계하자 회사는 부표처럼 떠돌았다. 수익성이 감소 되고, 채무 증가로 인해 재무적 불안정이 지속된 지 9개월이 지났다. 이십여 년 동안 청춘을 모두 바친 직원들은 뿔뿔이 헤어지고, 회사 정리를 위해 남아있던 나 또한 퇴직을 생각해야만 했다. 회사를 이대로 유지하자니 경험이 없던 상속자인 아내는 경영이라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밤잠을 못 이뤘다. 

 헤럴드 휘트먼은 "마음을 부리고 거느리고 살아야지 마음으로부터 부림을 지배당하면 아니 되며, 생각을 부리고 거느려야지 생각으로부터 부림을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오너라면 이러한 정신력에 숙련되어 있어야 한다. 경영에 문외한인 아내는 삐쩍 삐쩍 말라만 갔다. 

 몇 달 동안 대표가 두 번이나 바뀌고, 회계사와 세무사들이 갖가지 묘책을 내놓으며 회사를 이끌어 가도록 권면하였어도 ‘개 꼬리 3년 묵어도 황모(黃毛)가 못 된다’라고 전업주부로서 온실에 화초처럼 살아온 아내에게 당연한 노릇이었다회사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만 한다. 

 경리 실장으로 회사의 살림을 도맡은 나로서도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단순한 경영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차라리 유능한 경영자에게 넘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들었다. 때로는 포기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애살수(懸崖撒手)는 벼랑에서 손을 놓는다는 뜻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좌절이 아닌 방향을 바꿔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사업에 실패했을 때 과감히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도 된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했을 때 슬픔에 빠져있지 말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활력을 찾으라는, 중요한 시험에 실패했을 때 실망에 젖어있지 말고 다시 열심히 하여 재도전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몇 개월을 줄넘기하듯 어수선한 시간이 흘렀다. 거래처를 통해 회사를 매입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우여곡절 끝에 결정을 내린 아내는 결국 회사를 매도하기로 했다. 매도 계약서에 회사 직인을 찍던 날, 돌아가신 대표님이 이뤄놓은 사업장을 일으켜 보겠다는 매수인이 오히려 고마웠다. 돌아보면 이십여 년 동안 이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웠고 나름대로 성과도 많았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은 아쉽지만, 현애살수(懸崖撒手)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내려놓고 나니 체념보다는 스스로 의지를 굳혔다. 지난날의 행복했던 직장생활은 가야 할 먼 길을 가볍게 했다. 누군가 말했다. 두 발로 죽어라고 뛰어내린 곳이 ‘삶’이라고, 삶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후 강설로 인해 꼼짝없이 섬에 갇혔던 지난 몇 달, 당분간 섬이 되어 버린 내 안은 적막강산이지만 봄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안다. 이미 저 언덕 너머에서 오고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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