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죽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무겁고 진지한 의미를 띤다. 작가 안트예 담은 그림책 상자 속으로 들어간 여우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그가 들려주는 죽음의 세계는 무겁지는 않지만 진지하다. 그는 사람의 죽음을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억의 크기가 크건 작건 우리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존재들을 생각하면 극히 공감이 간다.

어느 날 저녁 숲 속에 늙은 여우가 나타난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 온 듯 매우 피곤하고 지쳐보인다. 숲 속에 사는 토끼들은 겁이 나서 여우가 잠들기를 기다려 조심조심 다가가 여우가 가지고 온 상자를 탐색한다. 뭐가 들었으며 여기는 왜 왔는지, 상자에 자기들을 가두어 놓고 하나씩 잡아먹으려는 건 아닌지 모든 토끼가 걱정한다.

그러나 흰 토끼 한 마리는 신이 나서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한다. 잠들었던 여우가 깨어나자 토끼들이 바들바들 떨고 그걸 본 여우는 자기가 너무 늙어 토끼 고기는 못 먹고 토마토 수프만 먹는다며 한 숟가락 먹어보라 한다. 흰 토끼가 다가가 맛을 보고 차츰 다른 토끼들도 여우와 친해지게 된다. 여우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먹이를 찾느라 고생한 이야기, 용감한 사냥 이야기, 많은 여우의 이름,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예쁜 아내 이야기 등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먹잇감은 말해주지 않은 채. 토끼들은 여우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재미있게 지내며 맛난 것도 구해주며 정성껏 보살펴 준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여우는 곧 죽을 거 같다며 토끼들을 불러 모은다.

너희가 나를 생각해 주면 난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웃음 짓는다. 토끼들은 가지 말라 붙잡지만, 여우는 자기가 가지고 온 상자 속으로 들어가 누워서 숨을 거둔다. 다음날 토끼들은 무덤을 만들고 작별의 노래를 불러준다. 여우가 생각날 때면 토마토 수프를 나눠 먹으며 여우 이야기를 하며 여우를 오래오래 기억하려 한다.

현명하고 안분지족을 받아들여서 평화로운 노후를 영위해야 하는 노년의 삶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이고 싶은 마음은 벌벌 떠는 토끼들을 안심시키려는 힘없는 여우와 겹쳐진다.

죽음이 애석하거나 슬프기만 하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자신을 아는 이들 마음에 남는 것이라면 그들에게 아름답고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람되게 살아내야 할듯하다.

현실 세계에서 여우와 토끼는 먹고 먹히는 관계이지만 그렇지 않고 친구가 될 어느 때도 있다. 서로 그럴 수 있을 때는 친구도 가능하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귀찮아서 아예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분적 사실로 전체를 오해하거나 가치관이 달라 아예 이해가 어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동물들의 이야기에서처럼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때조차 이해하고 다가서는게 번잡스럽기도 하다. 험한 시절을 탓해보기도 한다.

너무 경계하지 않고 이웃끼리라도 서로의 마음을 열어 따듯하게 지내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일지 안타깝다. 그런 처지에 이런 이야기는 작으나마 위로를 준다.

여우처럼 나의 삶은 이러했다고 가깝던 이들 불러모아 정리하고, 웃음지으며 삶을 마감하며 떠나는 일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할까. 그렇기로 사람이 평화로운 최후를 바라고 남은 이들 마음에 아름답게 얼마동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까지 헛된 욕심이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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