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BA 프로젝트 3’운영, 젊은 작가에게 3회 이상의 전시기회 무료 제공
기존의 틀을 깨나가는 태도에 주목, 박 작가의 작품 천여점 순차적 기획전 열 것
“몇 개의 갤러리 더 생긴다면 청주의 미술현장 세계가 주목할 만한 지역공간 될
설치미술가인 박계훈(58) 작가가 젊은 미술인들의 전시기회 확대를 위해 청주시 운천동 1462에 갤러리 소구무지(SOGUMUJI)를 개관했다. 소구무지는 운천동 마을공원 옆 주택 1층 30평 규모를 스테인리스를 이용해 모던한 스타일로 리모델링 했다.
‘소구무지’라는 이름은 박계훈 작가가 충북 단양 고향마을 뒷산이 소금 항아리 두 개와 물 항아리 한 개가 묻혀 있다는 전설 때문에 소구무지라고 불렸다는 데서 따 왔다. 어린 시절 늘 소구무지와 함께 자랐던 그 자연과 지명이 갖고있는 의미가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젊은 미술가들에게 척박하기만 한 청주지역 미술현장에서 작게나마 소금 역할을 하고 싶은 데서 출발한 셈이다.
소구무지는 운영방식으로 ‘WABA 프로젝트 3’을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의 WABA(When Attitudes Become Art)는 독일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이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었던 전시 ’태도가 방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Ways)에서 가져왔다. 이 전시에서 태도는 이전 체제와 규칙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의미하며, 이 태도는 미술의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전시로 구현된다.
‘WABA 프로젝트 3’은 한 작가가 3번의 전시를 통해 전시 방식을 실험하고 작품세계가 어떻게 작동되고 확장되는지의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의미의 기획이다. 청년작가들의 전시를 적어도 3회 정도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다.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기획자이기도 한 박 작가가 직접 작품을 보고 ‘예술의 익숙함과 서사적인 방식의 완고함에 틈을 내고 자신의 작품에 얼룩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태도’가 주목된다면 선택되는 것이다.
작가가 이 같은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게 된 배경은 2022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와 프랑스 아쉬뒤시에즈 미술센터와의 국제교류 일환으로 아쉬디시에즈 레지던시에 입주해 3개월 동안 머물며 창작 활동과 전시를 개최하고 돌아와서다.
당시 전시회에서 박 작가는 한지에 아크릴과 오일스틱 등을 이용해 이미지를 그리고, 오린 종이 표면을 부분적으로 열어 보이는 조각적 행위를 통해 망각과 기억, 역사와 예술 사이의 긴장감을 다양하게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여 유럽인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전시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 작가는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의 갤러리 문화가 한국 청주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수나 교사로 퇴직한 미술인들이 작업실을 만들 게 아니라, 전시장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도 수시로 전시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줘 지역과 미술인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구무지는 한 작가가 선택되면 적어도 3회의 전시를 무료로 지원한다. 그 작가를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다음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을 내놓는지 장기적으로 작가와 갤러리가 함께 성장하는 형식이다.
기존의 대관용 상업갤러리에서 1주일 정도의 전시 기간과 차별화를 꾀한다. 1회에 1달 이상의 전시 기간과 홍보 및 리플렛 등을 제공해준다. 지역사회에는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젊은 작가들에게는 작업 확장을 돕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 작가가 평생 해온 작업 천여 점을 순차적으로 기획, 전시해 관객이 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박 작가는 갤러리 개관 이유에 대해 "수많은 상업갤러리들이 잘 팔리는 80대 이상 노년의 작품과 전시 기획에 여념이 없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전시기회조차 주지 않는 풍토가 안타까웠다"며 "청주시립미술관과 창작스튜디오, 청주국립현대미술관, 한국공예관, 사설 미술관 등 미술에 관한한 전국적으로 청주가 결코 나쁜 조건은 아니다. 단지 좋은 조건을 잘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청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갤러리들이 있고 여기에 더해 몇 개 정도 더 소구무지 같은 갤러리가 생긴다면 청주의 미술현장이 급격히 달라질 것이며 세계가 주목할 만한 지역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30년 넘게 한눈팔지 않고 작업한 덕분에 많은 전시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다. 내 경험을 젊은 작가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경제적 여력이 허용되는 날까지 갤러리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소구무지는 박계훈 작가의 ‘낯익은 유령을 마주하다’ 전에 이어서 조준혁 작가의 ‘Eat Air:과호흡’ 전을 마무리하고 올해 전시를 준비 중이다.
충청매일 CCDN
SNS 기사보내기
김정애 기자
kjangey@ccd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