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헌
미술가

 

[ 충청매일 ] 오래 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의 일로 그 무렵 나는 막 군대를 제대한 뒤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라고 말하는 딸을 둔 아버지가 자신이 소망하는 딸에 관해 들려준 말이다. 그 딸은 성실한데다 말 수가 적고 배려심이 많아 친구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관계로 반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기에 중학생도 매일 두 시간씩 보충수업을 해야만 했다. 언젠가 본관 뒤편에 위치한 별관에 들렀다가 텅 빈 가사실습실에서 홀로 공부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보충수업이 시작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왔다가 수업이 끝난 뒤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으나 그녀는 대답 대신 수줍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담임교사에게 물어보니 근처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아버지로부터 딸이 보충수업에 참가하지 않게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무리에서 떨어져 외톨이가 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두려움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온함이 감돌았다. 이후로도 그녀는 계속해서 보충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격리되면서까지 보충수업을 마다하는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분기별로 만나던 지역의 교사모임에서 우연히 그녀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역시 과묵하고 말 수가 적긴 마찬가지여서 인사만 나눌 뿐 특별히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모임이 끝난 뒤 그에게서 자신의 집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캄캄하고 굽이진 산길을 돌아 도착한 그곳에는 늙은 노모가 살고 있는 방 두 칸의 작고 오래된 집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학교 근처 읍내에 살고 있었고 그는 수시로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낮고 좁은 방에 앉아 밤늦은 이야기 끝에 마침내 보충수업과 관련한 딸의 이야기를 물을 수 있었다. 

 줄곧 전교 1등을 하는 딸이 홀로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게 염려되지는 않았는지, 그런 아버지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는지 따위의 질문에 그는 앞서의 말로 답을 했다. 그는 경쟁에서 이겨 남보다 많은 걸 소유하고 성취하는 삶보다 타인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1등 하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 남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더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던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의 단호하지만 따뜻한 그의 눈빛과 표정이 기억에 또릿하다. 

  그 후 학교를 옮기고 나는 나대로 주된 관심인 미술에 묻혀 살아온 탓에 그와의 연은 계속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녀가 아버지의 바람대로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살아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이 무언지를 깨우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어린 나이에 삶의 정수를 터득한 것이다. 나는 그녀가 틀림없이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고 행복한 역경을 겪어내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떠오르는 건 나 역시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이 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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