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 상촌면 달밭마을 도담요 ‘김계순 도예가’

달밭마을 해발 680m 산중에 흙집 한옥 ‘도담요’ 지어 수양하듯 작업
"앉은 자리 3~4km 이내에 재료가 다 있다" 손님 말씀에 깨달음 얻어
상촌면 일대 원석 곱게 갈아 거친 흙과 섞어 사용해 투박함 느낌 살려
도담요 주변의 자연이 그릇의 진정한 주인…해외작가들과 교류도 활발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충청매일은 2024년 아젠다를 ‘지역공동체가 미래다’로 정하고 이것의 당위성을 부각하기 위해 ‘지역’과 ‘사람’을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충청지역의 발전을 위해 소중한 발자취를 남기거나, 타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삶의 여정을 지나는 분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 첫 기획 ‘사람과 일’로 충북 영동군 상촌면 민주지산로 달밭마을 김계순 도예가를 소개한다. <편집자글>

충북 영동군 상촌면 도담요 김계순 도예가가 통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 그릇을 쌓고 있다.

오래전 화전민들이 터를 일구어 살았지만 폐허가 된 첩첩산중 충북 영동군 상촌면 담안동 달밭마을을 서울토박이 도예가가 집과 가마를 짓고 불을 지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달밭마을 도담요(島潭陶)는 마음을 수양하듯 그릇을 빚는 김계순(66) 도예가와 회사를 퇴직하고 내려와 도담요 아트디렉터를 맡아준 남편 박병기씨가 함께 살며 작업하는 곳이다.

달밭마을 해발 680m 산중에 도담요를 마련한 것은 2007년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평생 친구이자 시누이인, 현재는 출가한 스님과 둘이 직접 집과 대량 생산이 어려운 한 칸 짜리 통가마를 지었다.

상촌면에서 민주지산로 방향으로 가다 우측 천만산 중턱에 위치한 달밭마을은 오래전 화전민촌이었으나 사람들이 떠나 흔적만 남은 곳이었다. 도예가는 화전민들이 살던 그대로의 지형을 유지하며 근처 탄광촌에서 사용한 폐자재를 구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흙집 한옥 형태의 도담요 작업실 세심정과 통가마를 짓고 주거공간과 다실, 빔 갤러리, 명상실 선방 범천재, 일반 손님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순차적으로 지었다.

통가마에 불을 때는 김계순 도예가.

도담요에서 나오는 그릇의 도특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 나자 ‘김계순 그릇’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같이 도자기를 하는 지인들은 물론이고 도예가의 그릇을 좋아하는 열성 팬들이 가마에 불을 지필 때마다 찾아온다. 도시 사람들이 현혹할 만한 자연경관 덕분에 주변 빈터에 하나, 둘 지인들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주로 주말용이다.

지인들이 집을 지을 때 도예가는 어느 정도 ‘텃새’를 부린다. 화전민들이 만들어놓은 터를 절대 변경하지 말 것, 나무는 있는 그대로 두고, 길은 이미 나 있는 길을 사용한다는 조건 등등이다. 도예가는 달밭마을의 자연을 원래 모습 그대로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도예가가 늦깍이로 도예에 입문한 과정은 예사롭지 않다. 문학소녀로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으나 결혼과 함께 꿈을 접고 현모양처가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살게 됐다. 현모양처를 실천하며 두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주입 시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딸아이가 "엄마 꿈은 엄마가 이뤄"라고 항변했다.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뭘 하고 싶었을까?" 지난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일기장에 도자기를 하고 싶다는 상념을 수시로 적어두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모양처라는 환상에 자신을 가두고 살다 한 인간으로 독립된 존재가 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누구와 부딪치지 않고 혼자 고요히 작업할 수 있는 도자기가 잘 맞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994년 도자기 하는 분을 찾아가 무작정 시작했다. 2000년에는 오대산 줄기 강릉 석구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해 3년간 작업했다. 도예가만의, 자연을 닮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수련을 하던 중 찻사발과 다구(茶具)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인사동 전시회에서 전통 찻사발의 대가인 김갑순 선생을 알게 됐다. 용기를 내 선생에게 배움을 청했다. 석구마을 산중 생활을 정리하고 파주 헤이리 선생의 작업실로 들어가 온고지신(溫故知新)정신과 도예가로서의 자세, 전통 찻사발 제작을 사사했다.

이후 공해 없는, 인공 유약을 입히지 않고 가마 안에서 생성된 재 자체가 유약 역할을 하는 무유소성(無釉燒成)에 입문하게 됐다. 2007년 달밭마을에 도담요를 만들기까지의 여정이다.

도담요 뜰에서 바라본 풍경.

도예가가 작업실을 깊은 산중에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흙과 불이 자연에서 얻어지듯이 자연과 함께하는 작업이므로 자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유소성을 하는 이유도 그릇이 되는 과정을 자연에 맡기겠다는 생각이죠."

통가마에 1천350도로 불을 때는 일이나, 흙을 직접 수비해 사용하는 모든 제작과정이 무한한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지만 자연이 주는 산빛과 달빛, 물과 바람, 풀과 나무, 들꽃이 주는 즐거움으로 이겨낸다. 가마 속에서 자신을 태워 유약이 돼 주는 나무에 감사하고 온갖 짐승 소리를 들으며 더불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산중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다.

2010년 경 부산에서 차와 도자기의 달인이신 한 큰 손님이 "상촌면에 통가마 작업을 한다는 사람이 있어 왔다"며 찾아왔다. 그분은 대뜸 오셔서 알고 있는 지식을 다 물려주고 가려는 듯, 마치 오래된 제자를 대하 듯 했다.

"도예가가 앉은 자리 3~4km 이내에 재료가 다 있다. 그 재료를 찾아 활용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큰 충격이었다. 손님과 함께 도담요 인근 산을 샅샅이 뒤졌다. 상촌면 일대에는 금광생산 하던 동굴이 많았다. 흙에는 금, 산화철, 동, 아연, 망간 등이 함유돼 있었다. 고령토가 나오는 곳도 알게 됐다. 손님에게 흙을 채취하는 방법, 가마를 때는 방법, 다도인의 자세 등 그동안의 공부와는 또다른, 옛 도예인의 덕목을 온몸으로 배웠다.

도예가의 작품이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촌면 일대에서 채취한 원석을 곱게 갈아 흙과 섞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3박4일 불을 때 1천350도가 된 통가마 속에서 소나무 재와 만나면 형태가 일그러지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색감과 휨 모양을 낸다. 제작과정을 자연에 의지한 만큼 결과물도 자연에 의탁해 완성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상촌면 일대의 재료만이 가능한 작업이다. 도담요 주변의 자연이 도담요 그릇의 진정한 주인인 셈이다.

다도(茶道)에서도 자신만의 다법(茶法)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듯이, 도예가는 그릇에 다도의 개념을 접목하려고 한다. 흙을 캐고 밟고 수비하고 성형하고, 가마에 불을 때 완성하는 모든 여정을 참선 과정으로 여긴다. 이 과정 자체가 도예가의 목표인 셈이다.

도예가는 매끄럽고 고운 그릇에는 재가 앉기 어렵다는 양승우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트임기법을 전수 받았다. 정형화된 그릇보다는 흙의 배합과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릇의 휨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흙이 아닌, 여러 가지 흙의 분배가 필요하다. 오랜 숙련과정과 남다른 노력을 거쳐야 터득할 수 있는 기법이다. 흙을 성형할 때나 가마에 불을 지필 때나 틀어어 두는 음악의 음파도 휨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도예가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혼자만의 작업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주도적으로 해외작가들과 교류하고 도예인들을 초대해 워크숍을 개최하곤 한다.

"사포로 다듬는 연마작업까지 내 혼이 녹아들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도예가가 그릇을 익히는 게 아니라 가마가 익어야만 그릇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때론 그릇이 저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서울 만큼의 고요함과 외로움,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의 소리와 빛, 그것들로 빚어낸 흔적들이 도인(陶人)으로서 발걸음을 조금 더 내딛게 됐다는 마음으로 세상에 찻그릇을 내놓습니다."

트임이나 휨이 있는, 그릇마다 다른 색감과 형태를 내는 도담요의 ‘김계순 도예’가 다도인들에게 고유한 상표를 획득하게 됐다. 깊은 산중 삶의 온기가 사라졌던 화전민촌 달밭에 ‘김계순 도예’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다.

김계순 도예가는 2005년 김계순 찻 그릇전 ‘산중다담’(통인화랑)을 시작으로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년 충북작가기획전(청주시한국공예관), 2014년 청주국제공예페어전(청주공예비엔날레)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건축 폐자재를 이용해 지은 도담요의 모습.
도예가의 작업실 내부 모습.
도담요의 빔 갤러리.
도담요의 빔 갤러리.
도담요 빔 갤러리에 전시된 그릇들.
도담요 빔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도담요의 다구.
도담요의 찻사발.
도담요의 찻사발.
도담요의 다구.
도담요의 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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