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미원중 교감

 

[ 충청매일 ]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한 호우와 폭설. 뜨거워진 지구만큼 지난 12월, 학교도 뜨거웠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기말 시험이 전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있었고, 온 국민 관심사인 수능 성적 발표도 있었다. 수능 뒤엔 언제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특히 ‘킬러문항’ 소동으로 이번엔 유독 그랬다. 수능 성적 공개 이후, 교육 관련 언론 기사 대부분은 수능에 대한 분석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즈음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색다른 기사 제목이 있었다. ‘집필진 허위경력, 과장광고…사교육 업체 9곳 18억 과징금(동아일보)’, ‘수능 출제 경력’ 등 거짓말…절박한 수험생들을 노렸다(경향신문)’ 등이 그것이다. 모의고사 출제 경력이나 수능 검토위원 경력이 수능 출제위원 경력으로 둔갑되는가 하면, ‘최다 1등급 배출’이니 ‘의대 정시 2명 중 1명 배출’이니 하는 뻥튀기 광고들이 판치는 등 적발된 부당 광고는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다.

 교육 정책이 바뀌고, 입시 제도가 변할 때마다 학원가는 그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성적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고, 그러한 불안심리를 파고드는 광고들은 춤을 추며 교육의 본질을 호도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은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방학을 맞은 우리 아이들의 발길은 또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필자가 중 3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이전에는 2월에 봄방학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들이 성탄절을 전후하여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방학 날 아침, 잔뜩 들떠 있는 학생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훈화를 했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대학 진학 여부가 결정된다. 고등학교 가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겨울방학 대비 학습전략을 잘 짜야 한다.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자는 각오만으로는 안된다. 이번 방학이야말로 실력을 향상할 절호의 기회이다. 절대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라." 놀라운 것은 필자가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0년이나 훌쩍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20년이 흘렀다.

 이젠 제법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방학 날 교실의 풍경은 달라졌을까? ‘놓을 방(放)’, ‘배울 학(學)’의 의미 그대로 그 기간 공부를 내려놓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입시 경쟁이 존재하는 한 학생들에게 방학이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줄 세우기 평가 속에서 어쩌면 방학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실종되었는지 모른다. 이상은 이상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국밥’인 셈이다. 

 그간 학교 공부 때문에 소홀했던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가족들과 아름다운 지역을 여행하면서 추억을 쌓기도 하고, 들에 부는 바람처럼 제 하고픈 일 맘껏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작 방학을 하고 나면 학생들은 더 바쁘다. 부족한 과목을 채우기에도 바쁘고, 입시에 유리한 스펙을 만들기에도 바쁘다.

 출근길 도로 곳곳에 겨울방학을 겨냥한 학원 현수막이 나부낀다. 일찌감치 학원쇼핑을 마친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상기온이 심해진 만큼 우리 학생들에게도 방학은 이상하지만, 이 이상한 방학이 훗날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스승의 기도를 한다.

● 약력

교육학박사

서원대학교 교육학과 겸임교수

한국국제교육교류학회 감사

교과와교과서학회 기관협력위원회 회장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격교육연수용 콘텐츠 평가위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