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모티브 작업, 너무 많은 삶의 사연, 그릴 수 없어 보따리로 묶다

박용일 작, ‘He-story’, 89x130cm, oil on canvas, sticth, 2022.
박용일 작, ‘He-story’ 135x135cm, oil on canvas, sticth, 2023.
박용일 작, ‘He-story’, 75x75cm, oil on canvas, 2023.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나노갤러리는 ‘보따리’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박용일 작가의 초대전‘He-Story@Home’을 다음 달 1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 ‘He-Story@Home’은 작가가 처음으로 고향인 충청도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지구 한 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끝나, 모든 사람이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생각을 은유한다.

보따리는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이다. 박 작가에게 보따리는 작품의 제목처럼 ‘He-story’로 통일된다. ‘He’는 ‘She’나 ‘I’로도 치환할 수 있다. 작가의 보따리는 그의, 그녀의, 나의 이야기,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따라서 그의 보따리 연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보따리인 셈이다.

박용일 작가의 그림은 덧칠을 하지 않는다. 대체로 한 작품을 시작하면 한 번에 끝내며, 유화물감을 사용하지만 수채화처럼 맑게 표현한다. 가볍고 얇은 천의 느낌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주제가 가볍지 않지만 예쁘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최근 작가는 보따리에 바느질을 입히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바느질에 쓰이는 실은 이어짐, 즉 연대를 의미한다. 또한 바느질은 무언가를 꿰매는 행위로 치유의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작가의 작품은 연대와 치유로 점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He-Story’는 ‘History’라고 발음될 수 있으며,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서사를 담아 계승되고 발전한다. 그의 보따리는 속을 드러내지 않는 보따리기에 무한하며, 보는 이의 상상을 유발한다. 작가는 보따리를 통해 관객이 각자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박용일의 보따리는 동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타자의 경험을 풀고 묶어 다시 싸매 배양하는 과정 아래에서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담아내지 못한 영역에서 보다 활발하게 운용되는 장소로 작동한다"며 "그 보따리 안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고 평했다.

박용일 작가는 "보따리에 담고 싶은 것은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보다 기름지게 하는 이야기들"이라며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복이나 돈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그리진 못하지만 누군가의 아름다웠던 그 날을 추억하는데, 아픈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차가운 현실을 견디는데,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보따리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의 보따리는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현실에 대한 발언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작가는 코로나, 전쟁, 자연재해, 기후위기 등 어쩌면 모두가 힘을 합쳐도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중한 가치들이 점점 소외되고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반문을 전제로 하는 탓이다.

박용일 작가는 충남 당진 출생으로 홍익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3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는 물론 중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고, 동아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중견 작가다.

특히 2023년 작가는 신세계 그룹과 협업해 정용진 부회장의 캐릭터, ‘제이릴라’가 그려진 보따리 작품을 영국 사치갤러리 전시에 출품한 바 있다. 한국의 생활에 자주 등장한 전통적인 보따리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며 해외에서 좋은 호응을 얻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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