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 충청매일  ] ‘매듭 달’이란 말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인터넷 ‘다음’의 한국어 사전에서는 십이월을 달리 이르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매듭은 실이나 끈을 묶은 마디를 의미하지만, 때로는 어떤 일과 일 사이의 마무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매듭 달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제야(除夜)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우리의 제야 풍습으로 매듭짓는 풍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믐날에는 한 해 동안의 거래관계를 모두 청산하기 위해 밤중까지 빚을 받으러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기만 하면 정월 보름께까지는 빚을 독촉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고 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매듭지는 것은 그 모양은 다르지만 여러 문화에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유래하여 1990년대까지 우리의 12월 관행이었던 망년회(忘年會)는 한해의 어렵고 힘들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한 매듭이었다. 쿠바에서는 365일 동안 나쁜 기운과 고뇌를 상징하는 더러운 물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서 자정에 집 밖으로 내던졌고, 이탈리아나 스페인도 종종 오래된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고, 남미 국가들은 종이로 만든 허수아비, 조각상이나 지난해 찍은 사진을 불태워서 과거와 단절하고, 덴마크에서도 문앞에서 접시를 깨뜨려서 지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매듭짓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풍습과 달리 전 세계 젊은이들이 제야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하여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나라와 상관없이 술을 마시면서 보내겠다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술을 먹으면서 보내겠다는 것에도 매듭이라는 의미가 함께한다. 

 도연명(陶淵明)은 음주이십수(飮酒二十首)에서 술은 시름을 잊게 하는 망우물(忘憂物)이고, 세상과 관계를 끊거나 세속의 일을 잊어버린다는 유세(遺世)이며, 자유롭게 소요하며 예속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소오(嘯傲)를 준다고 한다. 이처럼 술로 제야의 종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지난해를 시름을 잊어서 매듭짓고, 새해를 술이 주는 엔돌핀으로 더 즐겁게 맞이하고, 세속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찾겠다는 기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듭이란 말이 가지는 마무리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 제대로 된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한 해 동안 잘못 묶어진 매듭을 풀어서 새롭게 매듭을 짓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갈등으로 얽혀진 매듭을 풀고, 미움으로 지어진 매듭을 사랑으로 다시 묶고, 이념으로 묶인 매듭을 풀어서 서로의 삶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끈으로 우리를 다시 묶어야 할 것이다.

 시간은 끝도 시작도 없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항상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고, 성찰을 바탕으로 매듭지을 것은 매듭을 짓고, 잘못된 매듭은 풀어서 다시 매듭지어야 한다. 사람들의 지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섣달 그믐날 매듭짓는 풍습을 만들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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