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가

 

[ 충청매일 ] 기원전 317년 전국시대, 한(韓)나라 선혜왕 무렵에 진(秦)나라가 쳐들어왔다. 단숨에 두 곳의 성을 빼앗겼고 장수들이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한나라는 다급해졌다. 이때 신하 공중치(公仲侈)가 아뢰었다.

 "지금은 우호 동맹을 맺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나라와 화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나라는 이전부터 초나라를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진나라의 공격 방향을 초나라로 돌리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진나라와 우호 동맹을 맺어 초나라를 함께 정벌하고자 하시면 진나라가 흔쾌히 받아들일 겁니다. 이는 진나라의 목표를 우리 한나라에서 초나라로 바꾸는 계략입니다." 

 선혜왕은 바로 공중치를 진나라에 보내 화친을 맺었다. 얼마 후 한나라가 진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 공격에 나선다는 소문이 퍼졌다. 초나라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근심에 쌓였다. 그러자 신하 진진(陳軫)이 대책을 아뢰었다. 

 "이는 한나라가 자신들의 근심을 우리 초나라에 돌린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먼저 전군에 경계령을 내려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 선혜왕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우리 초나라와 한나라는 굳건한 동맹 관계임을 확인시켜주셔야 합니다. 지금은 한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에 초나라 왕이 우선 군대에 경계령을 내렸다. 그리고 많은 예물을 실은 수레 수백 대를 한나라로 보냈다. 초나라 사신이 선혜왕에게 아뢰었다. "우리 초나라가 병력을 총동원하면 결코 진나라에 뒤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나라와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앞으로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예물은 저희의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오." 

 선혜왕이 예물을 받고는 크게 기뻐했다. 이어 진나라와의 동맹을 무시하고 초나라를 따르고자 했다. 그러자 신하 공중치가 아뢰었다.

 "초나라의 빈말을 믿고 진나라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만일 동맹이 깨지면 쳐들어오는 것은 진나라이고, 당하는 건 우리 한나라입니다. 초나라의 달콤한 약속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우리 한나라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초나라의 계략에 속아서 강대국 진나라와의 동맹을 깬다면 분명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하지만 선혜왕이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끝내 진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했다. 진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단숨에 쳐들어왔다. 그러자 한나라가 급히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초나라는 군대를 보내겠다고 하고는 차일피일 미루었다. 결국은 단 한 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았다. 진나라 군대가 무차별 공격하여 한나라를 초토화 시켰다. 한나라는 나라가 멸망할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태자 창(倉)을 진나라에 볼모로 보내는 조건으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그러자 진나라 군대가 물러갔다.

 권모술책(權謀術策)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교묘한 술수를 의미한다. 또는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속임수를 말한다. 뜻하지 않은 뇌물이나 호의를 조심하라. 받을 때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대가는 아주 비참하다.

aionet@naver.com·유튜브 현문고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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