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 충청매일 ] 내 고향마을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을 따라 길게 일자형(一子形)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을 따라 아랫말에서 윗말까지 70여호 가량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추억은 온통 강과 연관되어 있다. 장마철이 지나 여름이 오면 강물에서 미역을 감고, 겨울에는 강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집집마다 올갱이와 민물고기를 잡아 올갱이국이나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겨울이면 강바람이 거셌다. 강물이 얼고 눈도 많이 내렸다. 새벽 잠결에 강물이 얼어붙는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얼음 위로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게 보여 마을 사람들은 긴 나무작대기에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끼워 얼음구멍을 뚫고 고기를 잡았다. 새벽이면 얼음이 얼고 갈라지는 소리와 얼음구멍을 내는 떡메소리가 온마을을 울렸다. 얼음 위로 눈이 내리면 둥근 트랙 모양으로 눈을 쓸어내고 썰매를 타고 스케이트를 탔다. 핸드폰도 없고 넷플릭스도 없던 시절이라 긴 겨울방학 내내 얼음 위에서 놀고 추우면 강둑에서 불을 피우고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은 정월대보름이 지나서까지 양지 바른 곳에 모여 술에 불콰한 얼굴로 윷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논두렁에 불을 놓거나 볏짚더미를 태우거나 공을 차며 놀았다.

 겨울밤은 깊고 길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녁밥수저를 놓기 바쁘게 또래들끼리 모여 놀았다. 어른들은 마을회관의 큰 방이나 인심 좋은 어느 집 사랑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달걀을 삶아먹으며 놀았다. 동네 구판장에서 노름을 하며 밤을 새우는 어른들도 많았다. 

 겨울밤, 어둠과 정적과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이 가득했던 그 겨울밤에 잊지 못할 추억이 많다. 내가 일곱 살 무렵, 서울서 사업을 하다 망한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있었고, 젊은 엄마는 삼남매를 재우고 마실을 갔었다. 우리 삼남매는 잠에서 깨어 엄마가 부재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울면서 동네 이집 저집을 다니며 찾아다녔다. 엄마를 못찾고 헤매던 그 막막한 밤에, 갑자기 흰 눈이 펑펑 내려, 빗자루로 눈을 쓸고 눈사람을 만들며 슬픔을 잊었던 그 겨울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로등 아래 골목길로 나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눈을 쓸며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잊고 즐기던 그 겨울밤이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따뜻하게 각인되어 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겨울밤이면 남녀 구별 없이 또래 친구들과 모여 놀았다. 밤늦게까지 놀아도 어른들은 아무런 간섭을 하거나 걱정을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특별히 강변 있는 과수원 한 복판의 빈 집을 찾아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밤새 놀았다. 녹음기를 들고, 먹을거리를 챙겨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어른들 몰래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샜다. 누구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기도 하고, 기타나 노래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은 겨울밤이면 골방에 누워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24권짜리 제3세대 한국문학을 읽었다. 한수산이나 김성동, 이청준, 이문열과 같은 작가들을 처음 만났고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문학소년으로 꿈을 키워갔다. 

  서정주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한 말에 빗대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달래강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유년의 추억들과 겨울밤에 쏟아지던 별빛과 그때 읽고 또 읽었던 소설책들이다. 가진 것 하나 없던 시절이었지만 결코 가난하지도 결핍하지도 않았던 그 겨울밤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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